[여론마당/정범모]대학은 정부의 시녀가 아니다

  • 입력 2005년 7월 12일 04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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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대학입시의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를 법으로까지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폭거다. 대학의 자율적 개선의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폭거다.

나 자신은 기여입학제는 처음부터 반대고, 고교등급제에는 부분적인 무게를 둘 만하며, 본고사는 하든 말든 대학의 자유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건 저런 생각이건 계속 협의 연구의 대상, 또 행정적 권장사항은 될망정 법까지 동원해서 원천적으로 연구 개선의 길을 봉쇄하려는 것은 권력의 폭거다.

나는 원칙적으로 대학입학전형은 지망생의 학력만 아니라 그야말로 지·정·의·체에 걸친 전인적인 평가라야 한다고 믿는다. 대학이 머리만 좋으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할 필요도, 당위도 없다. 사명감 책임감 지도력도 참작해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 내일의 참된 인재를 선발하는 길이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그런 전인평가의 방향으로 그 구체적 평가방법을 연구 개선해 가는 일은 각 대학의 자율적 전문적 소관이다. 적절한 대학입학전형 방법의 발견은 정치와 행정의 몫이 아니다. 전형방법은 심리측정이론, 교육평가이론 등 여러 이론이 게재되는 고도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소관이다. 거기에 정치 행정, 그리고 법까지 휘두르려 하는 것은 마치 병자의 진료 방법을 정치와 행정, 법으로 정하려는 폭거와 같다.

정부가 대학입시 문제에 부심하는 고충은 충분히 이해한다. 이 문제에 무관심으로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 이는 확실히 한국 교육의 가장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그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인지, 이제 우리는 그 과거부터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반세기 10여 차례의 입시개혁안에도 불구하고, 대학입시제도는 우왕좌왕을 거듭했다. 왜 그랬을까? 결론은 좋게 말해 이 문제에 대한 역대 교육부의 의욕 과잉, 나쁘게 말하면 대학에 대한 정부의 과잉 타율과 획일적인 정책 때문이다.

해법은 정부가 대학입시 문제에 관심은 갖되 손을 떼는 데 있다. 대신 입학전형 방법에 대한 각 대학의 자발적이고 계속적인 연구와 개선 노력을 장려해야 할 것이다. 또 대학교육에 지대한 정책적, 재정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그렇게 한다.

하지만 나라에 따라 관심은 다르다. 특히 독재국가에서는 대학을 정부에 종속시키려 하고 정치도구화하며 순종을 강요한다. 민주국가에서는 대학경영 자주성, 창의성, 다양성을 보장하고 독립적, 비판적 사고를 함양하는 데에 정책의 목적이 있다. 예컨대 미국 정부는 대학에 방대한 재정을 지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대학 당국에 대한 직접적 지원이 아니라 학생들의 장학금 등의 통로를 통한 지원이다. 대학을 정부의 종속관계에 두지 않고, 대학을 비굴하게 하지도 않으며, 제각기 다양과 창의의 꽃을 피우게 하려는 배려에서다. 그것이 미국의 세계 최고의 대학들을 낳았다.

우리는 지난날 어느 길을 택했으며, 내일엔 어느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일까?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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