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수진/관객도 빛난 로열발레

  • 입력 2005년 7월 1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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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세계 정상의 영국 로열발레단이 대표작 ‘신데렐라’를 한국 관객에게 선보였다. 이날 무대는 ‘신데렐라’의 첫 해외 나들이. ‘신데렐라’는 공연에 쓰이는 세트와 의상만 해도 컨테이너 10대 분량에 이르는 대형 작품이라 그간 해외 공연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자로 잰 듯 정확한 무용수들의 다리 각도는 “과연 로열발레”라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익살스러운 여장 발레리노의 연기도 볼거리였다.

하지만 공연 시작 약 30분 후, 무대 전환 과정에서 배경 막과 무대 세트가 부딪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일부 세트가 비스듬히 기울어지자 주역 발레리나 다시 버셀이 춤을 추며 무대 뒤로 빠져나갔다. 이어 로열 발레단 관계자가 뛰어나와 오케스트라 연주를 중단시킨 뒤 황급히 막을 내렸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두 차례의 안내 방송이 나오긴 했지만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공연이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막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러다간 공연이 취소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관객들은 모두 조용히 제자리를 지켰다. 조급하게 객석에서 일어나거나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17분여가 지난 뒤 막은 다시 올랐다. 사고로 다친 무용수는 없었지만,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요정 역의 발레리나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관객들은 춤이 끝나자 커다란 박수로 이 발레리나를 격려했다.

관객들의 반응에 보답이라도 하듯 로열발레단의 무용수들은 화려한 연기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관객들은 이들을 여러 번 무대로 불러내며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날 아낌없는 박수를 받아야 할 주인공은 자칫 엉망이 될 수 있었던 공연을 훌륭하게 끝맺을 수 있도록 성숙한 관람 태도를 보여 준 1781명의 관객이었다. 환불 요청을 한 관객은 함께 온 8명뿐이었다고 세종문화회관은 밝혔다. 한 무용가는 “당연히 환불 소동이 빚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침착한 관객의 태도에 오히려 놀랐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난 뒤 모니카 메이슨 로열발레단 예술감독은 세종문화회관을 통해 “동요 없이 격려의 박수까지 보내준 관객에게 매우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로열발레가 한국 관객에게 전하는 마음의 꽃다발이었다.

강수진 문화부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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