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주성/성장도 분배도 다 놓칠 것인가

  • 입력 2005년 7월 1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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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정부가 되는 조건은 무엇일까. 인권이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의 문제를 넘어서면 결국 국민을 고루 잘살게 해주는 정부가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성장과 공평한 분배는 민주국가의 정부가 택해야 할 기본 목표다. 성장을 위해서는 돈과 사람 등 나라의 자원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공장을 짓고, 기계를 사들이고, 기술개발을 하는 생산적 투자는 외면하고 부동산 투기나 위락시설과 같은 비생산적 용도에 자본을 쏟아 붓는 나라의 미래가 온전할 리 없다. 엄청난 교육비를 지불하며 길러낸 청년들이 정작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가 아니라면 이는 온 사회가 미치도록 고민해야 할 문제다.

자원이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배분되는 한 성장잠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줄어든 소득 탓에 계층이나 집단 간의 분배 갈등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소득분배의 경우 형평의 정의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만장일치식 합의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념적 대립이 불가피하다. 결국 다수의 견해를 반영하는 정권이 투표에 의해 선출되고 이들은 다음 선거에서 평가를 받게 된다.

흔히 말하는 성장과 분배의 상충관계는 경제논리의 산물에 불과하다. 정부자원은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복지 예산의 비중이 커질수록 투자나 고용을 위한 재원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저소득층이나 중소기업의 인적자원 개발과 모험정신 추구를 장려하는 방향의 분배정책은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무능한 좌파정권이 많았기 때문에 분배는 성장의 방해물처럼 인식되지만 우파정책이 무조건 우월한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성장과 분배 간의 단기적 상충은 불가피하지만 좀 더 멀리 보면 성장잠재력과 분배여력은 같은 말이다. 성장잠재력은 인적 물적 자원의 적절한 장단기 배분에 관련된 문제이므로 분배정책과 반드시 충돌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성장잠재력이 하락하는 경우 정부의 이념보다는 능력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상대적으로 후한 평가를 받는 것은 자본 축적과 노동 확충이라는 공급측면의 잠재력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고도성장으로 분배여력이 증가하며 국민 대다수가 과거보다 잘살게 된 것은 사실이다. 반면 그가 몰락한 이유로 흔히 독재정치와 분배 악화를 들지만 이는 1970년대 후반 들어 가시화된 성장잠재력 하락과 무관하지 않다. 무리한 시장 개입으로 자원배분의 비효율이 점증하는 시점에서 구조적 수술보다는 무리한 단기 팽창에 집중한 결과 부패와 비효율은 더욱 늘어나게 됐다. 자연 국민들이 나누어 가질 것이 줄게 되고 이에 대한 반발을 강압적으로 억제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1980년대 들어 사실상 강요된 안정화 정책 탓에 전두환 정부는 단기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재현할 수 있었지만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인적자원이나 기술 분야의 정책은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 이를 때까지 크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 절망의 지경에 이른 오늘날의 교육 현장이 대표적인 산 증거다. 강요된 구조조정 덕분에 김대중 정부 역시 반짝 경기를 누렸지만 잠복한 구조적 비효율이 다시 표면화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수 대기업이 생산하는 몇몇 품목의 수출에 목을 매는 불균형적 생산시장, 업종별 경력별 수급 불일치와 노조의 관료화로 몸살을 앓는 노동시장, 노후저축을 부동산 투기에 의존하게 유인하는 금융시장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 앞에서 동북아허브니 균형발전이니 하는 구호들이 무슨 빛이 나겠는가.

광복 이후 60년이 지났는데 오로지 욕먹는 대통령만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의지가 부족했건 능력이 없었건 국민을 잘살게 해주는 노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작지 않은 양적 팽창이었지만 그래도 성장잠재력에 초점을 두었던 박 전 대통령은 긍정의 시선도 함께 받는다. 성장과 분배가 함께 삐걱거리는 요즘의 현실을 보며 성장잠재력이 곧 분배여력이라는 생각이 재삼 간절해진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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