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세정]이공계 인력유출 어떻게 막을건가

  • 입력 2005년 5월 5일 18시 13분


코멘트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의·치의학전문대학원 추가 전환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다양하고 폭넓은 학문적 소양과 자질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여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고급 의료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는 취지다. 이 같은 교육부의 방침을 폄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또한 최고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겠다는 의료계의 욕심을 탓할 마음도 없다.

그러나 이 제도가 가져올 부작용들에 대한 대책은 세워야 한다. 그 대표적인 부작용이 전국의 자연과학대와 공과대에서 수많은 학생이 의·치의학전문대학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일이다. 실제로 의·치의학전문대학원이 신입생을 처음 모집한 금년에 서울대 자연대의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우수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의·치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여 학문 후속 세대 양성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

이번 발표대로 의·치의학전문대학원이 확대된다면 앞으로 이러한 양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 뻔하다. 하지만 교육부 어디에서도 이 같은 부작용에 대처하려는 움직임은 없다.

▼의·치의학대학원 쏠림현상▼

물론 자연대에 입학한 학생들을 교수들이 잘 지도하여 전공을 살리도록 유도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진로에 따른 현실적인 반대급부가 월등히 차이 나는 상황에서 학문에 대한 흥미만으로 학생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도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은 넘쳐 나지만 기초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부족하여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의 정원마저 경직되게 운영되고 있어 기초과학 학과들의 입학정원은 늘지 않은 채 우수 졸업생들은 썰물같이 빠져나가 학문 후속 세대가 끊길 위험에 처해 있다.

우수한 의료 인력의 양성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국부를 창출하는 이공계 인력의 양성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기에 근년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노력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심지어 모순되는 정책들이 시행되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이공계에 흥미를 갖게 하려면 중고교에서 과학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공계 기피 현상이 한창 논의되던 시기에 시작된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과학과목의 비중이 6차 때보다 오히려 줄어들어 중고교에서의 과학교육이 위축되었다.

지금 제8차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데 독도 문제 등으로 국사 과목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그 여파로 힘없는 과학 과목의 비중이 더욱 축소되지나 않을까 많은 과학자들이 우려하고 있다.

요즘 고교 1학년 학생들에 대한 내신등급제와 대입에서의 논술 강화 방침에 대한 논란도 정교하지 못한 인력양성 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다. 사실 그동안 성행했던 고교의 무분별한 내신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상대평가제를 도입한 것은 그런대로 명분이 있다. 그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에도 등급제를 도입하여 학생들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빼앗긴 대학들이 논술 강화를 들고 나오는 바람에 학생들은 내신과 논술, 수능을 모두 대비해야 하는 삼중고를 겪게 된 것이다.

▼종합 인력양성대책 세워야▼

이처럼 한 가지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정책의 정교함이 매우 필요한데 그런 고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의 한쪽 면만 보고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는 일은 그만 하고 종합적이고 유기적인 인력양성 정책을 마련하는 성숙함을 보여 줄 때가 됐다.

오세정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물리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