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곽금주]무한경쟁시스템이 자살 부른다

  • 입력 2005년 5월 1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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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이 아니어서, 성적이 상위 1% 집단에 속하지 못해서 자살을 택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중학교에서 전체 1등을 하던 학생이 특목고에 진학해 중학교 때만큼 성적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비관하여 자살한 사례도 있었다.

외국과는 달리 학업성적에 대한 비관이 한국 청소년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왜 우리 청소년들은 외국의 청소년들보다 성적에 더 집착하는 것일까. 성적에만 집착하고 결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여 학생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는 우리 교육제도와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자살을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요인은 절망감이다. 절망감을 일으키는 위험요인에는 개인적 요인뿐 아니라 개인이 부딪치는 부정적인 생활사건이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실패나 좌절 등이 있다. 이런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지게 되고 부정적인 자기개념으로 인해 절망감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만성적인 우울이나 충동적인 자살로까지 이어진다.

▼1등 아니면 소외되는 교육체제▼

실패와 좌절 상황을 극복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학습 또는 공부와 관련한 실패상황을 극복하는 원동력 중 하나가 목표성향이라는 인간이 지닌 동기다. 행동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목표성향 동기는 두 가지가 있는데, 공부를 하는 과정을 더 중시해 배우고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는 데 초점을 두는 성향(학습목표)과, 공부의 결과나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평가에 초점을 두는 성향(평가목표)이 그것이다.

심리학 실험 결과들은 목표성향에 따라 학생들의 수행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학습목표 성향을 가진 학생은 과정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쉬운 과제보다는 조금 더 어려운 과제를 시도하는 반면 평가목표 성향을 가진 학생은 부정적인 결과나 실패에 민감하여 자신의 능력에 비해 쉬운 과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실패와 좌절 시의 행동에서도 차이가 있어, 학습목표 성향 학생은 실패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정보를 수집하고 전략을 짜서 다시 시도하고 노력한다. 그러나 평가목표 성향 학생은 자신이 수행한 결과와 그 평가에 더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실패 원인을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은 능력이 없는 무의미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쉽게 좌절이나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즉, 목표성향에 따라 실패가 갖는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실패란 학습목표 성향 학생에게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탐색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능력을 향상시키려 노력할 필요성을 의미하지만, 평가목표 성향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능력이나 자질 부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목표성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 가정환경, 교사의 태도, 교육 환경 등과 같은 주변 환경이 어떤 성향을 요구하느냐에 따라 형성된다.

평가목표 성향을 요구하는 성적지상주의 사회에서 학생들은 실패와 좌절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쉽게 절망한다. 무한경쟁 속에서 상대평가에 의한 평가목표 성향만을 요구하는 교육체제는 그 부산물로 자살에 가장 취약한 절망감이라는 심리요인 또한 키워가는 것이다.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좌절을 강요하는 무한경쟁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절망감에 따른 청소년 자살을 막기 어려울 것이며, 이를 방치하는 우리나라의 미래도 결코 낙관적이지 않을 것이다.

▼희망보다 절망 심어주는 사회▼

이 아름다운 봄날!

인생의 사계절 중 봄에 해당하는 청소년기에 희망보다 절망을 심어주는 교육체제와 사회분위기에 우리 모두 무감각해져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자성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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