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의혹]철도청 왜 무리수 두며 사업 집착했나

  • 입력 2005년 4월 20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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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 유전개발 투자 의혹 사건 관련자 소환에 착수하면서 수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검찰이 밝혀내야 할 핵심 의혹들을 짚어본다.

▽철도청이 유전사업에 왜 뛰어들었나=가장 중요한 의혹이다. 이 사건이 단순히 철도청 내부 직원과 일부 개발업자에 의한 무리한 투자였는지, 단순 사기사건인지, 권력 실세가 개입한 대형 게이트인지를 가릴 수 있는 척도다.

외형상 이번 사건은 단순한 투자나 사기극으로 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검찰 내부에서도 권력의 개입이나 비호 없이는 설명이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철도청이 당시 철도재단 이사인 왕영용(王煐龍) 사업개발본부장을 통해 러시아 사할린 유전회사 인수 전담 회사인 한국크루드오일(KCO)을 설립한 것은 지난해 8월 17일. 부동산개발업자 전대월(全大月) 하이앤드 대표와 지질학자 허문석(許文錫) 씨에게서 사업 제안을 받은 지 불과 한 달여 만이다.

철도청은 회사 설립 후 6일 만에 재단 정관도 바꾸고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실무자가 재단이사장의 위임장까지 조작했다.

철도청은 만성적인 적자와 고유가에 대비한 비용절감을 사업 참여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정치권 개입 있었나=등장인물과 신속한 추진 등을 보면 정치권 또는 권력 실세의 개입과 비호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이 가는 대목이 많다.

이 사업을 추진한 허문석 씨는 노무현 대통령후보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李基明) 씨와 고교 동기로 절친한 사이였다.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10월 4일 허 씨가 사할린 유전개발 사업계획서를 접수시킨 당일 승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나라당 정문헌(鄭文憲) 의원에 따르면 올해 초 H&K에너지 대표를 맡았던 허 씨가 신청한 북한 모래채취 사업은 통일부가 이튿날 바로 승인서를 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업을 처음 구상했던 권광진(權光鎭) 쿡에너지 대표는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사업 초기부터 줄곧 관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 씨는 19일 검찰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두하면서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잠적 중인 전대월 씨도 당초 정치권 연루설을 부인하다 최근 이를 번복하고 있다. 그는 일부 언론과의 접촉에서 철도청에서 받기로 한 사례비 120억 원 중 상당부분이 정치권 몫임을 시사했다.

서류상으로 오간 것이라지만 철도청이 전 씨에게 사례비로 120억 원이라는 상식 밖의 액수를 책정한 경위도 검찰이 밝혀야 할 대목이다.

▽단순 사기극일 가능성도 배제 못해=권력실세 개입설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의 주장이 크게 엇갈린다.

이광재 의원은 “업자들과 철도청 직원들이 내 이름을 팔고 다닌 단순 사기사건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허 씨나 왕영용 본부장 등도 모두 권력의 개입이나 비호를 부인하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사업 초기에 이광재 의원이 전대월 씨를 허문석 씨에게 소개해 준 것밖에 없다. 이 의원 주장대로 이후 사업 추진과정에서 핵심 관련자들이 청와대나 이 의원의 이름을 사업에 활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 사건이 1992년의 정보사터 사기사건과 비슷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직 군 장교와 건설업자 등이 모의해 정보사 부지를 수의계약으로 불하해 주겠다고 속여 제일생명으로부터 660억 원을 사취한 사건이다. 당시 권력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수없이 제기됐으나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에서 드러난 결과는 ‘단순 사기사건’이었다.

그러나 철도청이라는 정부기관이 개입한 이번 사건은 정보사 사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권력형 비리 사건일 것이라는 의견이 아직은 더 많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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