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시형]‘터키 老兵’을 잊을 수 없습니다

  • 입력 2005년 4월 14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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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우리 대통령이 터키를 친선 방문했습니다.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역사상 처음이란 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6·25전쟁 당시, 이 나라를 지켜 준 혈맹의 나라인 터키의 우정에 감사하기 위한 방문이어서 뜻이 깊습니다.

진작 있었어야 할 감사의 표현이 이렇게 늦어져 송구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간의 국내 사정이 급박해 예의를 갖출 여유도 없었습니다. 오직 전쟁의 폐허 위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의 나날이었습니다. 거기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휴전선의 팽팽한 긴장, 북한의 핵…. 우리에겐 한 치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린 터키의 우정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1999년 터키의 지진 소식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터키의 아픔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자연 발생적으로 태어났습니다. 온 국민이 동참해 줬습니다. 주관하는 사람으로선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불행에 온 국민이 성금을 모은 것도 사상 처음이었습니다.

▼월드컵-지진돕기로 우호 증진▼

이듬해 2000년은 6·25전쟁 발발 5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참전 용사들이 한국을 방문했지만 터키의 ‘노병’은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한국-터키친선협회가 결성돼 터키 노병을 위한 ‘국민 감사의 밤’이 열렸습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모자의 꽃다발과 선물, 그리고 함께 부른 아리랑은 우리의 우정이 얼마나 돈독한가를 보여 준 감동의 한마당이었습니다. 터키 노병 대표의 인사말은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니 우리가 흘린 피가 결코 헛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그런 비극이 없어야겠지요.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또 벌어진다면 우린 주저 없이 녹슨 총을 다시 꺼내 들고 제2의 조국, 한국을 지키려 달려올 것이오.”

박수와 감동의 눈물로 장내는 오히려 숙연해졌습니다.

우리 친선협회가 바쁘게 된 건 월드컵 때였습니다. 터키 참전 소식에 이른 봄부터 응원복을 만드는 등 정신이 없었습니다. 예선전을 치르면서 터키 서포터들이 수만 명에 이르러 응원복 제작에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습니다. 터키 응원단은 목이 터져라 응원했습니다.

3, 4위전이 벌어진 날, 대구는 완전히 축제 무드였습니다. 승패는 다음이었습니다. 혈맹의 우의를 다지는 감동의 장이 된 것입니다. 대형 터키 국기가 스탠드에 펼쳐지면서 우리의 우의는 세계인마저 감동시켰습니다.

그날 이후 터키는 더욱 가까운 나라로 우리 곁에 다가왔습니다. 한국의 많은 배낭족이 터키를 방문했습니다. 그 덕분에 월드컵이 끝난 후 터키 응원복을 더 많이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걸 입고 터키에 가면 모두가 반가운 형제처럼 덥석 껴안고 환대해 주었습니다. 인터넷엔 지금도 터키를 방문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리고 있습니다.

▼양국 교류확대 계기되길▼

‘Welcome to Korea’단은 그해 해외투어 제1차로 터키에서 친선행사를 가졌고, 한국-터키친선협회도 지진 돕기 이후 여러 차례 터키를 다녀왔습니다. 역대 주한 터키 대사들은 외교관례를 깨고 강원도 산골 터키문화관에서 함께 묵으며 우리와 형제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외교관들이 부러워한다니 더욱 어깨가 으쓱합니다. 지난번 터키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바쁜 일정에도 우리 협회 회원들을 숙소에서 제일 먼저 접견해 준 그 따뜻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간 기회 있는 대로 대통령의 터키 방문을 건의 드린 바 있습니다만 늦게나마 결실을 보게 돼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의 돈독한 우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더욱 긴밀한 교류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이시형 정신과 의사·한국-터키친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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