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경영 7년… 신세계 구학서 사장의 좌절과 다짐

  • 입력 2005년 4월 13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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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구학서 사장은 “한국사회 특유의 온정주의가 남아 있는 한 국내 어느 기업도 윤리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공과 사를 구별하고 온정주의를 버려야 국민 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신세계
신세계 구학서 사장은 “한국사회 특유의 온정주의가 남아 있는 한 국내 어느 기업도 윤리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공과 사를 구별하고 온정주의를 버려야 국민 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신세계
“참 암담하더군요. 7년 동안 윤리경영을 한다고 해 왔는데 임원들도 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신세계 구학서(具學書) 사장이 ‘7년 윤리경영’을 추진하면서 겪은 고충과 마음고생을 솔직히 털어놨다.

구 사장은 12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2월 17일 개최한 ‘윤리경영 임원 워크숍’에서 좌절감을 맛봤다고 고백했다.

한 임원이 “윤리경영을 너무 엄격히 적용해 협력회사 직원들과 식사 자리조차 갖기 힘들어졌으니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

구 사장은 “접대를 하고 안면을 익혀야 일이 진행되는 문화를 바꾸자는 것이 취지였는데 ‘그것이 힘드니 좀 살살 하자’는 얘기였다”며 “‘지금까지 헛고생을 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고 말했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어느 기업도 아직 윤리경영을 제대로 하는 곳이 없다. 신세계도 100점 만점에 10점도 안 된다. 그만큼 힘들다. 한국사회 특유의 온정주의 때문이다. 사적인 관계에서 필요한 이 정서가 회사 업무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는 온정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한국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맞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가 생각하는 윤리경영 설계도는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직원들이 식사를 함께하더라도 ‘자기 몫은 자기가 내는 문화’를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식적인 회식은 회사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맞지만 몇몇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회사 돈을 쓰거나 상사가 지불하는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구 사장은 “회사 비용을 줄이자는 목적이 아니다. 공사(公私)를 구별하자는 것이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이런 마인드를 갖지 않으면 어떤 기업도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구 사장은 이런 목적으로 자기 밥값은 자신이 내는 ‘더치페이’에서 이름을 딴 ‘신세계 페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내부에서뿐 아니라 이런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직원들에게 월 1회 반드시 협력회사 직원과 회식을 갖고 그 비용을 각자 부담토록 지시했다.

임원들에게는 매월 윤리경영에 관련된 책을 나눠 주고 리포트를 제출토록 했다. ‘윤리경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연말에는 ‘신세계 페이 인센티브’를 신설해 별도로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할 예정이다. 윤리경영 실천으로 줄어든 비용은 개인에게 되돌려 줄 테니 ‘자신의 돈으로 당당히 쓰라’는 메시지다.

깨끗한 거래관계를 위해 중소 납품업자의 제품을 별도로 모은 ‘품평회’를 1년에 2회 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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