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권순택]인사청문회 만능인가

  • 입력 2005년 4월 11일 18시 05분


코멘트
“국회가 검증을 하면 그만이지 임명하라 말라 하는 것은 대통령 권한에 대한 월권이다.”

“국무위원 전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의 도입은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며 인사의 공정성, 객관성, 절차의 신중성을 높이는 방안이 될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관해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의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은 둘 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처음 인용한 것은 노 대통령이 2003년 4월 25일 국회 정보위원회의 인사청문회 결과 채택된 ‘부적절’ 의견을 ‘무시’하고 고영구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한 말이다. 그로부터 2년 후인 6일 열린우리당 새 지도부 초청 만찬에서 노 대통령이 한 말이 두 번째 발언이다.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두 가지 발언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사청문회가 대통령의 임명권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청문회를 실시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청문회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국무위원을 임명하겠다면 두 가지 발언이 모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그렇다면 청문회는 왜 하느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미국에서라면 대통령이 말을 바꿨다고 상당한 비판을 받았을 만한 일이다. 정치인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말 바꾸기는 자해 행위로 통한다.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패한 결정적인 원인의 하나도 그의 잦은 말 바꾸기였다는 분석에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인사청문회에 관한 노 대통령의 말 바꾸기를 문제 삼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인사청문회 확대는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잇따른 인사 검증 실패를 계기로 국무위원 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대세’처럼 돼 가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청문회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국무위원 외에 공정거래위원장 등으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한술 더 뜨고 있지 않은가.

부실한 사전 검증과 이른바 ‘코드인사’ 같은 인사 파문의 직접적인 원인은 사라지고 인사청문회만 확대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매년 수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미국 상원의 인준청문회는 1787년 헌법 제정 과정에서 대통령과 의회가 타협한 결과물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 누가 고위 공직자의 임명권을 갖느냐는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됐다. 결국 대통령이 상원의 조언과 동의를 얻어 임명하도록 헌법(2조 2항)에 명시됐고 이를 근거로 상원 인준청문회가 도입됐다.

인준청문회가 시행착오 끝에 정착된 미국에서도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능력보다 개인의 가치관이나 도덕성 평가에 주력해 청렴하지만 무능한 사람이 선호될 가능성, 인준 지연에 따른 주요 공직의 장기 공백, 정당의 정파적 이용, 개인의 기본권 침해 등이 대표적인 문제들이다.

청문회 대상 확대는 물론 긍정적인 측면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늬만 청문회’나 ‘면죄부 청문회’가 계속되는 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기대하지 않는 게 낫다.

권순택 워싱턴 특파원 maypo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