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四寅劍으로 전승공예대전 대상받은 홍석현씨

  • 입력 2003년 12월 14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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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전통 도검 복원 작업에 매달려 온 홍석현씨가 경기 고양시 일산의 작업장에서 제작중인 칼날을 살펴보고 있다. -고양=김동주기자
20년간 전통 도검 복원 작업에 매달려 온 홍석현씨가 경기 고양시 일산의 작업장에서 제작중인 칼날을 살펴보고 있다. -고양=김동주기자
영화 ‘반지의 제왕’에는 세상을 지배할 힘의 원천으로 주문이 새겨진 반지가 등장한다. 조선시대 우리에게도 그 못지않은 신품이 있었다. 그것은 칼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사람을 베는 칼은 아니었다.

사인검(四寅劍). 12간지 중 호랑이를 뜻하는 인(寅)이 네 번 겹치는 때, 즉 호랑이 해의 호랑이 달, 호랑이 날, 호랑이 시에 만들어졌다는 칼이다. 본시 60년에 한 자루만 만들어 왕에게 바쳤다는 이 칼은 한 면에는 각종 별자리 모양, 다른 면에는 칠성문(七星文)으로 불리는 27자의 한자가 상감기법으로 새겨진다. 외적의 침입과 재앙뿐 아니라 내부의 악도 베어내겠다는 뜻이 간직돼 있다.

올해 전승공예대전에서 이 사인검이 대통령상을 받았다. 유일하게 칼집과 함께 발견된 고려대 박물관 소장품을 복원한 작품과 이를 응용한 작품 등 두 자루다. 이 검의 제작자는 20년간 전통 도검을 복원해 온 홍석현(洪錫顯·49)씨.

“칼은 종합예술품이에요. 금속공예는 물론이고 칼집을 만들고 장식하는 목공예, 철갑상어가죽 등 혁피를 두르는 가죽공예, 손잡이에 술을 다는 매듭공예까지 온갖 기술이 다 들어가지요.”

그는 본시 나전칠기 전문가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가난을 면하기 위해 자개농방에 들어가 10여년간 나전칠기에 매달렸다. 그러다 5공 시절 대통령이 장성에게 하사하는 삼정도(三精刀) 제작에 참여하면서 칼의 세계에 눈을 떴다. 처음에는 칼을 장식하는 조각을 맡았다가 쇠를 다루는 법까지 터득해 칼 제작의 전 과정을 익혔다.

“전통도검 제작기법부터 알아야겠다 싶어 전국의 대장간을 순례했죠.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맥이 끊겼더라고요. 그래서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각종 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연구했습니다.”

그렇게 복원한 전통도검이 이순신 장군의 지휘도, 백제 무령왕의 환두대도, 경남 옥전고분의 단봉 환두대도 등 15자루가 넘는다. 그중에서 그가 최고의 검으로 꼽는 것은 뜻밖에도 1500년 전 제작된 무령왕 환두대도다.

“지금은 일본이 칼의 나라로 꼽히지만, 일본 검은 6세기 무렵 한반도의 환두대도(손잡이 끝에 둥근 고리가 장식된 큰 칼)가 전해져 발전한 겁니다. 일본에서 최고의 모델로 삼는 것이 바로 무령왕 환두대도죠.”

2000년 그는 1년에 걸친 노력 끝에 이 칼의 복원에 성공했다. 공주박물관을 수십 차례 들락거리며 뜯어본 끝에 부활시킨 것. 정작 이 작품은 2001년 국전에서 입선에 그쳤다. 하지만 절정에 도달한 그의 칼 제작 기술이 사인검의 정신세계와 만나 올해 비로소 빛을 본 셈이다.

그러나 경기 고양시 고봉산 기슭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는 찬 바람이 불었다. “언제까지 배워야 하느냐”는 질문에 “나도 배우고 있는데 어찌 알겠느냐”며 도리질치는 그를 견디지 못해 제자들이 모두 떠났기 때문이다.

“뭐라 할 수 없죠. 칼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폐교 같은 널찍한 공간을 얻을 수 있으면 기술 배우기 힘든 장애인 제자들과 함께 예술작품으로서의 칼 제작 기술을 전수하고 싶을 뿐입니다.”

고양=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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