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34…낙원에서(12)

  • 입력 2003년 10월 6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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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사정을 하고 나미코의 입에서 몸을 떼어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남자가 밖으로 나가자 그때까지 참고 있던 나미코는 카멜레온액이 담겨 있는 놋대야에 토했다.

다음 남자가 들어왔지만, 나미코는 돌아보고 인사를 할 수도, 단추가 떨어져 나간 앞섶을 여밀 수도 없었다.

남자가 훈도시를 풀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일본 사람이지?”

나미코는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 뭐라 대답할 수도 없었다.

“먹는 게 달라서 그런가, 조선 계집들은 마늘 냄새가 나고, 중국 계집들은 양파 냄새가 나니까 금방 알 수 있거든. 그런데 너한테서는 일본 여자 냄새가 나.”

나미코의 얼굴에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닿았다.

“일본 여자 안아보는 것도 네가 끝이로군. 라오스로 전속이 됐어. 남방은 우한하고 달라서, 오늘 목숨을 내일까지 부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곳이거든…. 사이판에서도 옥쇄, 괌에서도 옥쇄, 나도 아마 그런 신세가 되겠지.”

나미코는 눈을 감았다. 남자는 두 손으로 젖가슴을 움켜쥐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서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젖가슴을 움켜잡은 손이 떨릴 정도로 힘만 주고 있다. 머리가 아프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프다, 아이구 눈부셔! 아야! 아이구 하느님, 아무쪼록 나를 잠들게 해 주세요…땅속 깊이 뻗어 내려가는 삼나무 뿌리처럼 깊게…화악산 꼭대기 저 높은 하늘에서 맴도는 매의 날개보다 큰 잠을…밀양강가에 흐드러지게 핀 민들레 솜털처럼 부드러운 잠을…아무쪼록 제게 그런 잠을…제발…제 몸과 마음을 현실에서 멀리 떠나게 해주세요…풍성한 잠을…그 잠 대신 제 목숨을 앗아가도 좋아요…아이구 아야…악…으윽, 이 남자,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내 몸 위에서 잘 생각인가? 격침 당한 배의 잔해에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아아, 그래 내 몸은 나의 잔해…그러나 이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장소…삶의 마지막 장소…그럼 나는 어디에 매달리면 좋지? 삶? 아니면 죽음?

눈을 뜨자 남자의 목덜미를 기어다니는 이가 보였다. 나미코는 오른손을 쭉 뻗어 이를 꾹 눌러 죽이고, 그 손을 등으로 돌리고 물결처럼 허리를 움직여 남자의 몸을 자극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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