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대선자금 공개 제안]민주-한나라당 반응

  • 입력 2003년 7월 21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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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일부 밝히겠다”▼

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이 23일 공개하기로 한 민주당 대선 자금은 지난해 9월30일 당시 노무현(盧武鉉) 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직후 모으고 쓴 돈으로 한정된다.

따라서 공개 대상은 △공식선거운동기간(지난해 11월 27일∼12월 18일)의 자금 내용(수입액 283억원, 지출액 274억원·선관위 신고 기준) △선대위 출범 직후부터 후보등록일까지 사용했다고 이 총장이 밝힌 정당 활동비용 80억원 등이다.

하지만 공개의 핵심인 수입액의 경우 국고보조금(120억원)을 제외한 순수 모금액에 대한 해명이 280억원(정대철 대표)부터 150억원(이 총장)까지 엇갈리고 있어 이 총장이 모금액이라고 밝힐 금액의 진위에 대한 해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항목은 공개, 기부자는 제한 공개=이 총장은 이날 “자금을 항목별로, 또는 금액 크기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장 해명대로라면 수입액 중 돼지저금통(4억5000만원) 온라인 성금(44억∼45억원) 대기업(70억원) 중소기업(30억원)으로 나눠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목별 기부자는 철저히 익명으로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장은 “1억원 이상 기부 기업 또는 개인 후원자 등을 공개할 수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모든 내용 공개는 정치자금법상 금지되는 만큼 이니셜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문석호(文錫鎬) 대변인은 “기업명을 알파벳으로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출 결산 짜 맞추기 논란 가능성과 실사 여부=이 총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대선자금을 사용한 뒤 40억원이 남았으며 이를 올 1, 2월 당 운영비로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 백서에서 “선거자금 확보와 지원이 여의치 않아 각 연락소의 선거운동이 원활치 못했다”고 밝힌 만큼 40억원이란 거금이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당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투명한 자금 내용에 대한 검찰 수사나 실사 가능성은 현재로서 불투명하다. 이 총장은 이날 “여야 합의로 수사 기관이 조사하고 문제가 되면 처벌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검찰 등이 수사를 위해서는 피의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만큼 여야가 합의를 통해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길을 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문 대변인도 “검찰 수사를 받아도 무리 없을 만큼 깨끗하게 공개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라고 말했다. 자금 수사 이전에 외부 기관의 회계감사 수용 여부도 마찬가지. 일단 이 총장도 “(요구가 있으면) 그때 가서 대응하겠다”고 말했고, 민주당은 최근 회계사 등을 동원해 대선 자금 장부를 다시 정리했다는 후문이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野 “위기탈출 속셈”▼

“별 내용이 없네.”

21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대선자금 관련 특별기자회견을 지켜본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가 한 말이다. 진솔한 ‘자기 고백’이라기보다는 야당을 끌어들여 굿모닝게이트 정국을 탈출하려는 ‘전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이날 기자들이 “노 대통령이 여야의 대선자금을 다 같이 공개한 뒤 정치개혁하자고 했다”고 회견 내용을 전하자 “대통령이 어디 정치개혁하자고 했느냐. 지금 하자는 것은 다른 것 아닌가”라며 “민주당 대선자금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조사하면 되는 것 아니냐. 왜 한나라당까지 문제 삼느냐”고 반박했다.

홍사덕(洪思德) 총무도 “영세서민의 돈까지 들어간 굿모닝시티 로비자금을 대선자금으로 사용한 불법비리와 현행 정치자금법의 미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불법비리 문제는 별개사항으로 철저하게 검찰에서 수사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과 관련해 ‘여야 동시 공개’ 카드를 고수하는 것은 여권의 정국 운영 구상과 무관치 않다는 게 한나라당의 생각이다. 굿모닝게이트로 촉발된 여권의 대선자금 비리사건을 여야 정치권 전반의 문제점으로 확대시켜 정치권 ‘새 판 짜기’의 촉매제로 삼겠다는 속셈이라는 것.

원희룡(元喜龍) 기획위원장은 “정치권 전체를 ‘비리의 온상’으로 몰아붙인 뒤 기존 정치권과 차별화된 ‘노무현 신당’ 출범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겠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런 상황에서 여권의 페이스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이 이날 최고지도부인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노 대통령의 제안을 즉각 거부하고 나선 배경엔 이 같은 정국 판단이 깔려 있다.

다만 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이 23일 대선자금의 일부라도 먼저 공개할 뜻을 내비치자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일단 지켜보겠지만 기업들의 지원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못할 경우 신선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의 고민은 여권의 파상적 공세에 맞설 대응카드를 찾는 문제. 한 핵심당직자는 “당분간 여권의 대선자금 공세에 맞대응하지 않고 청년실업과 카드빚 등 민생 이슈를 부각시키며 정국 주도권을 잡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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