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72…아메 아메 후레 후레(48)

  • 입력 2003년 7월 20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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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석이 모두 차서 소녀는 2인석에 사냥모를 쓴 남자와 마주앉게 되었다. 하얀 식탁보, 도자기 꽃병에는 탐스러운 모란이 꽂혀 있다. 꽃잎 가장자리는 빨갛고 가운데는 노란 모란이다. 천장에는 알전구에 우윳빛 갓을 씌운 전등 여덟 개가 죽 달려 있다. 검정 세 줄 단추 제복에 검정 나비 넥타이를 맨 급사장이 다가와 남자에게 인사하며 갈색 가죽 표지의 메뉴판을 내밀었다.

“어서 오십시오.”

“으음.”

급사장이 주방으로 돌아가자 초록색 원피스에 하얀 앞치마를 입은 웨이트리스가 물잔이 담긴 쟁반을 한 손에 들고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주문은 뭘로 하시겠습니까?”

남자는 메뉴를 읽어내려갔다.

“수프, 스테이크, 볶은 채소, 밥, 프린, 과일, 커피, 양식이 좋으냐?”

“뭐든 상관없어요.”

“양식 둘.”

“마실 것은 뭘로 하시겠습니까?”

“맥주는 뭐가 있지?”

“기린 맥주와 칭다오(靑島) 맥주가 준비돼 있습니다.”

“그럼 칭다오 맥주.”

“칭다오 맥주.”

“으음.”

어두워진 창에 탁 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보니 커다란 빗방울이 유리 표면을 흐르고, 열린 창문으로 비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급사와 웨이트리스는 서둘러 창문을 닫았다.

“이 지방의 우기는 7월하고 8월이다. 그것도 일본의 장마 때처럼 추적추적 끈적끈적하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요란스럽게 쏟아지지.”

소녀는 눈동냥을 해가며 하얀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잘라 입에 넣었다.

“이거, 얼마나 하는데요?”

사냥모 쓴 남자는 거품이 인 맥주잔을 손에 들고, 콧잔등에 주름까지 잡아가며 행복한 듯 웃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커, 1엔20전.”

“네?” 소녀는 두 손에 쥔 포크와 나이프를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1엔20전이면 향촌(鄕村)의 냉면이 10전이니까, 열두 배다, 안 먹고 그냥 돈으로 받을걸 그랬다고 생각하면서 소녀는 회색 하늘과 비에 가려지는 차창 밖 풍경에 눈을 돌렸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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