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포석 人事의 세계]삼성그룹 회장 이건희<3>

  • 입력 2003년 6월 26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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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왼쪽)이 2002년 4월 전자제품 비교 전시회를 둘러 보고 있다. 이 회장 오른쪽이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기홍기자
이건희 회장(왼쪽)이 2002년 4월 전자제품 비교 전시회를 둘러 보고 있다. 이 회장 오른쪽이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기홍기자
《“대졸 신입사원 중 여성 인력을 얼마나 뽑았지요?” 3년여 전, 삼성그룹 인력관리를 총괄하는 구조조정본부의 노인식(盧寅植·부사장) 인사팀장은 이건희(李健熙) 회장에게서 느닷없이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노 팀장은 ‘아차’ 싶었다. 이 회장이 학력과 성차별 요소를 모두 없애라고 지시한 게 1994년. 지시에 따라 채용시 남녀 구분을 없애고 여직원 유니폼을 없애는 등 나름대로 선진적인 남녀평등 제도를 펴 왔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인력 채용을 차츰 정상화하던 시기여서 여성 채용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까지는 미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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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량”이라는 보고가 끝나자 전화기에서 나지막하지만 준엄한 꾸짖음이 들려왔다.

“말귀를 못 알아들었습니까.”

이 전화 통화 이후 삼성의 대졸 신입사원 중 여성 인력 비율은 15%→18%→20%로 차츰 높아졌고 올해는 3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인사에서는 여성 3명이 임원으로 승진했다.

―회장께서 여성 인력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기업에서 여성을 배려해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데 틀린 말입니다. 여성은 배려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합니다. 여성 인력을 안 쓰면 경쟁력을 잃게 돼요. 여성 스스로도 이 부분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여성 인력 활용은 제2 신경영의 주요한 축(軸) 중 하나예요.”

이 회장은 “다른 나라는 남녀가 동등하게 경제에 참여하는데 우리는 두 바퀴에 하나가 빠지고 가는 외발자전거 격 아닙니까”라고 지적했다.

“모성애의 위대함도 그렇지만 여성의 감성, 꼼꼼함 등은 대단한 강점이에요. 21세기를 감성시대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벤처기업,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성공한 여성 기업인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그들의 창의성과 감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겁니다. 제품개발 기획 마케팅 구매 등의 부서에 여성 인력을 전진 배치해야 합니다. 입사나 승진 때 불이익을 없애는 것은 물론이고 전문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을 과감하게 임원으로 발탁할 겁니다. 또 선진국을 벤치마킹해 좋은 제도를 도입하라고 되풀이해 주문하고 있어요. 여성 근로자를 위한 컨설턴트도 채용하고 탁아소도 더 많이 지어야 합니다. 산전 산후 휴가도 충분히 줘야 해요.”

이 회장은 그러면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같은 철(鐵)의 여성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대처니까 그렇지’라든가, ‘여자도 아니지’라는 식으로 말합니다”라며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회장은 “외국 지도자 얘기가 나왔으니 제가 만났던 중국 지도자 얘기를 할까요”라며 이공계 기술인력 육성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장쩌민, 후진타오 등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방한하면 꼭 삼성의 반도체사업장을 방문합니다. 그러면 그분들은 저에게 반도체의 핵심기술인 디자인, 즉 회로선폭에 대해 묻습니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은 사업장 규모나 매출 등 일반적인 내용을 묻지만 중국 지도자들은 달라요. 반도체 기술의 핵심을 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인재 관리에서 ‘천재 키우기’ 못잖게 중점을 두는 부문이 ‘이공계 기술인력 육성’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어떻게 저렇게 갑자기 컸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국제자본을 끌어들인 것도 있지만 장쩌민, 후진타오 같은 이공계 출신들이 최고 지도부에 포진해 과학기술 분야의 엘리트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 최고위급인 국무원 영도(領導) 18명 중 이공계 출신이 15명입니다. 80%가 넘지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번 참여정부 첫 내각의 장관급 이상 21명 중 이공계 출신은 단 2명입니다. 역대 어느 정부나 사정은 비슷해요. 게다가 이공계 지원자는 자꾸 줄어들고 있잖아요. 똑똑한 학생들은 법대나 의대에만 가려고 하죠. 이대로 가다가는 기술경쟁력, 산업경쟁력이 떨어지고 결국 국력이 쇠약해지고 맙니다.”

이 회장은 “지금 우리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인 위기상황”이라며 “기업 정치 행정 등 각계 리더들이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등줄기에 식은땀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반도체에 관심을 가질수록 저는 더욱 초조해집니다. 투자나 기술에서 우리가 한발 앞서나가야 하는데 국내에는 아직까지 여러 규제가 남아 있어요. 손발 묶고 나가 싸우라는 얘기나 다름없지요. 수십조원을 투자해 여기까지 온 반도체산업이 중국에 발목을 잡히면 다시는 회복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경영은 인문계 출신이 적임이라는 시각도 있는데요.

“사장을 하면서 전공이 무엇이냐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로서 선견력과 결단력을 갖추었다면 인문계든 이공계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다만 전자와 같이 기술이 기업의 경쟁력과 생존조건인 회사에서는 최고경영자(CEO)가 기술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추면 더 좋겠죠. 엔지니어가 경영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자로서의 자질과 능력만 갖추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는지 수없이 많은 관문을 통해 검증을 받게 되죠.”

이 회장은 삼성의 이공계 출신 전문경영인들을 예로 들었다.

“좋은 예가 삼성전자 윤종용(尹鍾龍) 부회장이죠. 윤 부회장은 전자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기술에 대한 지식과 안목이 해박해요. 게다가 일본을 오가면서 근무해 전자업계 전반에 대한 사업 감각을 두루 갖추었고 사업 방향을 내다보는 눈과 결단력도 있어요. 이윤우(李潤雨·전자 디바이스솔루션네트워크 총괄) 사장도 반도체사업에 초창기부터 참여해 오늘날 삼성의 반도체사업을 꽃피운 주역이지요. 이들을 삼성의 대표적 테크노 CEO로 볼 수 있어요.”

이 회장은 나아가 “디지털 시대인 21세기에 경영은 경험만으로는 어려우며 새로운 창의성과 선견력이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발탁한 이공계 출신 젊은 CEO들이 바로 그런 기대주들.

“2000년에 황창규(黃昌奎) 임형규(林亨圭) 이기태(李基泰) 이상완(李相浣) 사장 등을 삼성전자의 CEO로 발탁했지요. 이들은 기술자 출신이며 사업부장으로서 괄목할 만한 경영성과를 거뒀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황 사장은 전 세계 메모리 업계가 모두 적자에 허덕일 때 삼성만 흑자를 낼 정도로 잘 이끌고 있어요. 임 사장은 메모리 분야의 기술경험을 바탕으로 비메모리 분야의 경쟁력 확보에 크게 기여했지요. 이상완 사장은 일본에 비해 사업 진출이 늦었던 초박막트랜지스터액정표시장치(TFT―LCD)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어요. 이기태 사장은 애니콜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웠지요. 기술 하나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인재들이에요.”

창의성과 전문성, 결단력을 갖춘 젊고 참신한 인물의 발탁에 주력한 결과 당시 40대이던 부사장들을 대거 CEO로 발탁했다는 설명이다.이 회장은 그러면서 삼성의 CEO 인사 프로세스를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삼성 관계자들은 ‘채용 면접에 관상 보는 사람이 동석한다’던 60, 70년대의 소문에 대해서도 진위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이학수가 있기에…" ▼

신(新)경영이 본격화하던 1994년, 삼성은 임원들을 차출해 6개월 과정의 최고경영자 교육을 실시했다. 임원들은 이것이 ‘솎아내기’를 위한 전 단계가 아닐까 하고 떨었다. 그러자 이 회장은 “걱정 마라. 이학수(李鶴洙)도 교육에 보내겠다”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바로 그 이학수 그룹구조조정본부장은 지금도 삼성의 전문경영인 중 최고 실세로 꼽힌다. 이 회장에게 물었다.

―이 본부장에게 중임을 맡기고 계신데 혹시 특별한 인연이 있는지요.

“개인적인 인연은 없어요. 이 본부장은 그룹 경영과 사업 전반에 대해 폭넓은 시야와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는 분이지요. 특히 1993년 신경영을 시작할 때 그룹이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관제탑 역할을 제대로 해줬어요. 그리고 가장 어려웠던 IMF 때 구조조정본부장이라는 어려운 자리에서 뼈를 깎는 심정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그룹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전력해 줬어요.”

이 회장은 특히 “이 본부장이 사심이 없었기에 계열사간 조정, 절충 역할이 가능했다고 본다”며 “회사 이기주의, 사업부 이기주의에 휘둘렸다면 구조조정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기자들이 출세 비결을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줄’을 잘 섰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코스를 밟아왔다는 뜻. 1971년 공채로 입사한 그는 지방공장 경리과 근무를 자원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지방에서 동료들의 숙직과 일직을 도맡아 하며 모든 공정을 파악한 뒤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원가분석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실적을 올렸다.

8년 뒤 제일모직 본사 관리부장으로 영전해 현장 실무와 이론을 두루 꿰뚫게 됐고 이병철 회장 시절이던 1982년 비서실로 옮겨 20년 넘게 2대를 보좌하고 있다. 특히 IMF 이후 재무통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걸어다니는 회계장부’로 불릴 만큼 빈틈없는 그의 장점이 십분 발휘되고 있는 것.

삼성의 고위 간부들은 “이 회장이 이 본부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내 말귀를 제일 잘 알아듣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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