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칼럼]'무원칙'이 신뢰 흔든다

  • 입력 2003년 6월 25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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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도자의 최대 위기는 국민의 존경을 잃는 것이다. 정치지도자에 대한 존경은 국민들의 신뢰로부터 나온다. 불행하게도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신뢰를 훼손해 존경과 권위를 추락시킴으로써 다시금 국민의 우려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의 국정수행 능력과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사방에서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걱정할 일이다.

그가 이번에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의 특검 수사를 중도에 중단시킨 것도 최근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과 조흥은행 파업 사태 등 일련의 문제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국정수행의 무원칙성과 맥을 같이한다.

▼ 특검중단 盧대통령 평소 말과 달라 ▼

노 대통령은 당초 자신의 선거공약과 야당의 압력 때문에 고민 끝에 대북 송금 사건의 특검을 받아들였다가 여당과 일부 시민단체의 압력이 커지자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기왕의 방침을 뒤집었다. 특검은 과거 3회 도입되었지만 대통령이 특검측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한 예는 없었다. 2001∼2002년의 이용호 게이트의 경우는 2차에 걸친 수사기간 연장으로 105일간이나 조사를 하고도 그 결과가 미진하다 해서 법을 개정해 기간연장을 더 하자는 논의까지 나왔었다.

노 대통령은 송두환 특검이 사건의 진상규명 및 합당한 처리 등 마무리를 위해 추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한 데 대해 송금 의혹 사건 수사가 ‘완결된 상태’라고 일방적 규정을 내렸다. 이것은 특검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법이 정한 특검의 정치적 중립과 직무상 독립을 해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전달되었다는 150억원 의혹에 대한 수사도 특검의 소관사항이라는 특검측 의견은 물론, 현 특검팀에서 수사기간을 연장해 이 문제를 계속 수사하는 것이 옳다는 강금실 법무장관의 건의도 묵살하고 이를 새로운 특검이나 검찰이 맡아야 한다고 했다.

대북 송금 의혹 사건에 대한 이번 특검 수사는 대북 교류협력정책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북측에 비밀 송금된 돈의 성격을 정확히 밝혀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 돈의 성격을 정확히 규명해 다시는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이어받은 것이지만 북측에 일방적으로 끌려만 가는 방식은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그의 새로운 대북 정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을 철저히 밝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가 국가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당파적 개인적 이해타산에서 특검 수사를 서둘러 마무리하도록 한 것은 그의 평소 말과는 다른 정치 행태이다.

특검은 서둘러 업무를 마무리하면서 김대중 정권이 북측과 정상회담 개최를 협의하면서 1억달러를 보내기로 약속하고, 나중에 현대측에 이를 부담시켰다는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과연 이것이 진실의 전부일까라는 한 가닥 의문과 함께 특검이 수사기간을 연장해 계획대로 보다 철저한 수사를 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어쨌든 김대중 정권이 민족을 내세워 국민을 계속 기만했음이 드러났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은 역대 정권의 대북 교류협력 정책과는 달리 북한측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면서 이벤트성 교류사업에 치중하다가 가장 중요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문제를 경시한 데에 문제가 있다. 그 결과가 오늘의 북핵 위기 사태다. 이것은 이번에 밝혀진 대로 뇌물까지 바치면서 정상회담을 구걸한 저자세 외교가 빚은 필연적 결과다.

평화번영정책을 내건 노 대통령에게 국민이 바라는 것은 절대로 과거처럼 불투명한 대북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 대북송금 국민 기만 드러나 ▼

역대 많은 집권자들은 동기는 서로 달랐지만 대북 정책에서 업적을 올리려 했다. 노 대통령도 후보 시절인 지난해 5월 인천에서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른 분야는) 다 깽판 쳐도 괜찮다”고 말한 것을 국민들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지나친 성취욕에 사로잡혀 대북 정책을 그르치지 않으려면 이번 특검수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끝>

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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