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국정원 모두 책임져야

  • 입력 2003년 6월 23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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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고위 간부 22명의 사진이 청와대와 국정원의 ‘공조’로 특정 언론에 공개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정원장 등 정무직 간부를 제외한 1, 2급 간부의 얼굴과 신원 직책 등은 국정원 스스로 비밀로 분류하고 있는 중요 정보다. 외부의 공작에 의해서 유출됐다고 해도 기겁을 할 일인데 국정원이 자발적으로 공개에 ‘기여’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조사를 지시했지만 그의 말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국가권력의 핵심부와 최고 정보기관이 비밀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국가적으로도 망신이다. 북한 정보 당국은 귀중한 정보를 힘 들이지 않고 한꺼번에 취득한 셈이다.

청와대는 대통령 전속 사진팀이 오마이뉴스의 요청에 따라 노 대통령의 국정원 방문 때 찍은 사진을 제공했다고 경위를 밝혔다. 국정원과 청와대가 아무 생각 없이 대통령과 간부들의 단체사진을 찍게 했고, 청와대는 공개되어서는 안 될 인물들이 포함된 사진을 주저 없이 언론에 넘겼다는 얘기다.

문제의 사진은 무려 39시간이나 인터넷에 올라 있었다. 국정원은 비밀이 노출됐는데도 거의 이틀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국정원 원훈(院訓)이 말장난이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국정원은 직원들의 비리 연루와 대북 송금 개입 등으로 국민을 실망시켰다. 새 정부 들어 개혁을 한다고 떠들지만 기본인 보안업무에 큰 구멍이 뚫린 국정원을 국민이 신뢰하기는 어렵다.

청와대와 국정원은 사진 공개과정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엄히 처벌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청와대는 특히 비밀 여부조차 따지지 않고 코드가 맞는 인터넷 매체에 선뜻 대통령 관련 사진을 제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해야 한다. 이미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치는 것이 권력 핵심부가 보안 불감증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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