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광현/부총리와 수배자의 협상

  • 입력 2003년 6월 23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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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23일 오전 정부 과천청사의 재정경제부 브리핑실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조흥은행 파업 결과를 둘러싸고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와 재경부 출입기자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것. ‘공방(攻防)’의 핵심은 ‘법과 원칙’이었다.

“부총리가 며칠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이번 조흥은행 파업은 불법파업이라고 해놓고 불법파업 당사자들과 협상테이블에 함께 앉은 게 잘한 일인가?”

“경제시스템이 불안해지려는데 국가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이 대화창구를 마련한 게 잘못된 일인가? 중재에 안 나섰으면 아마 팔짱만 끼고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을 것이다.”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고 했는데 앞으로 비슷한 불법파업이 벌어져도 계속 비슷하게 중재에 나설 것인가?”

“정부가 이번에 무슨 법, 무슨 원칙을 어겼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보라.”

김 부총리의 목소리는 이례적일 만큼 격앙돼 있었다. 그리고 “7000여명의 파업에도 흔들리지 않고 ‘법과 원칙’을 지킨 성과는 평가받아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의 말에서는 대형 은행의 전산망 마비라는 국가적 재난을 큰 불상사 없이 막은 것을 왜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느냐라는 서운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어진 기자들과의 공방에서 답변하는 사람이 정부각료인가를 의심케 하는 발언도 없지 않았다.

“최종 협상장에는 수배자도 들어왔는데 이것이 법과 원칙을 지킨 것인가?”

“현실적으로 수배자가 조흥은행 노조 지부 위원장이라 불가피했다. 위원장이 들어오지 않고는 노조원 설득이 안 된다. 불법파업이라도 대화와 타협 원칙은 지속돼야 한다.”

불법이라도 실세(實勢)라면 현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다. 그래서 공개적인 석상에서 부총리와 수배자가 협상을 벌이는 장면이 ‘연출’됐다는 것이다.

정부와 김 부총리는 이번 사태해결 방식이 ‘법과 원칙을 지킨 선례’라고 자화자찬(自畵自讚)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불법과 타협’을 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정부가 차라리 “일부 아쉬운 점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피했던 점도 이해해 달라”고 해명했다면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주 뉴욕 보스턴 런던 등에서는 민관 합동 한국경제 설명회가 열렸다. 여기서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아무리 좋은 반응을 얻은들 무엇 하랴. ‘불법과의 타협’이라는 사례가 나타나면 그들은 ‘한국은 믿기 어렵고 투자하기 곤란한 나라’라고 또다시 외면하지 않겠는가.

김광현 경제부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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