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송영만/2005년 프랑크푸르트로 가자

  • 입력 2003년 6월 20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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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8일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Buchmesse) 전시장 앞의 마리팀 호텔을 지나치던 필자는 초밥집 앞의 20여m가 넘는 긴 줄에 놀랐다. 초밥정식 1인분이 80유로(11만3000원) 안팎의 만만찮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사람들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심 부러웠다. 1990년 일본은 동양권에선 처음으로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主賓) 국가로 선정되었고, 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 후 유럽 전역에서 일본풍이 유럽인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국제도서전 主賓國으로 결정 ▼

2002년 하반기 해외에서 한국인과 맞닥뜨리는 외국인이라면 모두 그 여름의 ‘붉은 월드컵’을 들먹이며 한국인들을 치켜세웠다. 낙엽이 짙게 물든 10월의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2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은 역시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은 어딜 가나 친숙한 인사말이었고, 우리의 상징이었으며 기호였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최고급을 자랑하는 한 호텔의 초밥집을 보는 순간 우리의 ‘자만심’은 이내 사그라지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이 도시를 찾은 세계의 출판문화 예술인들을 그네들 입맛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1990년 일본이 유럽 속에 일본문화를 심은 지 4년 만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어찌된 일인지 주빈국을 멋지게 치르고 나면 두세 해 뒤 그 나라에 노벨문학상이 돌아가곤 했다. 1997년의 주빈국 포르투갈은 그 다음해에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고, 1999년의 주빈국 헝가리도 2002년 임레 케르테스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묘한 인연이었다.

필자는 얼마 전 서울국제도서전을 방문했던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조직위원회’의 홀거 엘링 부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 상관성을 물어보았다. 돌아온 말은 뜻밖이었다. 주빈국이 되면 그해 독일 전역에서 열리는 각종 문화예술 행사에 그 나라 문화가 널리 홍보되고, 이는 독일문화권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북유럽, 특히 스웨덴과 노르웨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작년 10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장 인근의 호텔에서 가졌던 국제출판협회 집행부와의 만찬에서 사무총장 베노이트 뮐러가 필자에게 한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너희들이 내심 노벨문학상을 생각하면서 작가들이 대거 서울에서 이곳으로 온 모양인데, 한국은 아직 주빈국 행사도 한번 치르지 못한 상태 아니냐.”

안색이 불콰해질 만큼 취기가 오른 자리에서 던진 반농담조의 말이었지만 개운치 않게 들렸다.

이제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으로 한국이 결정되었다. 일본은 호황의 정점으로 치닫던 1990년, 왕세자가 명예위원장이 되어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12억엔(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00억원 상당)을 쏟아 부으며 유럽 속에 일본문화를 소개했다. 이후 일본 문화는 유럽에 급속도로 스며들었다. 파리의 거대한 지하상가의 일본 양품점은 지금도 성황을 이루고 있고, 스위스의 소도시 인터라켄오스트 역 앞 일본문화 상품점도 여전히 붐빈다.

2003년의 주빈국은 러시아다. 볼쇼이 발레, 모스크바 필 등을 이끌고 작가 100여명과 200여명의 문화예술 행정가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인솔 아래 올가을 독일에 진출할 것이다.

▼우리 문화 유럽에 심을 기회 ▼

“이제 유럽, 아니 세계에서 한국의 냉장고 자동차 휴대전화 등은 고급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예술과 정신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2005년은 한국에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엘링 부위원장의 말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책축제 만이 아니라 ‘문화올림픽’이다. 한국의 정신과 역사가 담긴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독일 전역에서 1년 내내 펼쳐져야 할 것이다. 출판뿐만 아니라 국악, 영화, 미술, 무용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유럽에 심어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송영만 효형출판 대표·대한출판문화협회 국제교류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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