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천주교-원불교 여성성직자들 매달 모여 기도회

  • 입력 2003년 6월 20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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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소회 기도회에 참가한 여성 성직자들이 경건한 자세로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왼쪽부터 양도승 교무, 진명 스님, 최실비아 수녀. 뒤쪽은 혜명스님. 박주일기자 fuzine@donga.com
삼소회 기도회에 참가한 여성 성직자들이 경건한 자세로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왼쪽부터 양도승 교무, 진명 스님, 최실비아 수녀. 뒤쪽은 혜명스님. 박주일기자 fuzine@donga.com
19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사간동 원불교 시민선방.

원불교의 상징인 둥근 원이 걸려 있는 단상 위에 최실비아 수녀(살레시오 수녀원)가 정성스레 촛불을 밝혔다. 이어 불교방송 ‘차한잔의 선율’ 진행자인 진명 스님이 죽비를 치며 “이제부터 세계평화와 종교화합을 위한 삼소회(三笑會) 6월 정기 명상기도회를 갖겠습니다”고 말했다.

죽비 소리에 맞춰 스님, 수녀, 원불교 여성교무들은 각자의 예법대로 9번 절을 하기 시작했다.

삼소회는 비구니 스님, 수녀, 원불교 여성교무 등 세 종교 여성 성직자 11명의 모임. 한달에 한번씩 절이나 성당, 교당에 모여 명상기도회를 갖는다.

삼소회 멤버는 최실비아 수녀 진명 스님 외에 혜명(전남 무안군 용주사), 혜조 (서울 성북구 청룡암), 혜성 스님(인천 강화군 백련사), 윤레티치아(노틀담 수녀회) 오카타리나 수녀(성공회 성가수녀회), 원불교 김지정 양도승 최현일 이하정 교무 등 11명.

9배를 올린 뒤 이들은 명상에 들어갔다. 명상의 주제는 참가자마다 다르지만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나 이라크전쟁, 혹은 새만금 갯벌 등 특별한 이슈를 택할 때도 있다. 방안에는 금세 정적이 감돌았다. 미동도 않고 그들은 1시간 동안 자신만의 기도와 선(禪)을 이어가고 있었다.

삼소회는 1988년 만들어졌다. 올림픽이 끝난 뒤 열린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이 무관심 속에서 치러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원불교 김지정 교무의 주도로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과 천주교여성장상연합회 소속 수녀 등이 10월 3일 개천절 호암아트홀에서 장애인올림픽 돕기를 위한 음악회를 연 것이 계기가 됐다.

1991년엔 제3세계 기아 난민을 위한 시화전을 백상기념관에서 열었다. 수녀가 시를 쓰고 비구 스님이 그림을 그리거나, 비구니 스님이 글을 쓰고 신부가 그림을 그린 60편의 시화가 전시됐다. 1998년엔 다시 북한어린이돕기 음악회를 열었다.

“수녀님이 예불가를 부르고 스님과 교무님이 아베마리아를 부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모양입니다. 성악을 전공한 이들이 아닌데도 많은 분들이 와주신 것은 종교간에 더욱 친하게 지내라는 격려겠죠”라고 진명 스님은 말했다.

단발성 행사만으로 갈증을 느끼던 사람들이 다시 모인 것은 지난해 5월.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한달에 한번씩 만나 정기적으로 기도회를 갖기로 한 것이다. 장소는 세 종교가 돌아가며 제공한다. 월 회비는 ‘단돈’ 5000원.

“우리 만남은 세 종교를 창시한 성인들의 뜻대로 살자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제 역할만 해도 사회가 이토록 혼탁하진 않을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위로와 안도를 주게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최실비아 수녀)

명상이 끝나자 종교마다 발원문을 낭독했다. 비구니 스님은 발원문을 ‘석가모니불’로 끝맺었고 수녀의 발원문은 ‘주님의 기도’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들은 내년 초 인도 부다가야, 로마, 런던, 전남 영광군 등 각 종교의 성지로 함께 순례를 떠난다. 각 종교를 창시한 성인의 참뜻을 되새겨보자는 취지. 경비 마련을 위해 이들은 7월 중 자신들의 출가 과정을 담은 책을 펴낸다. 일정이 확정되면 출발 100일 전부터 종교화합을 위한 기도를 할 예정이다.

“9·11테러나 이라크전쟁의 바탕에는 종교적 갈등이 깔려 있습니다. 너무 거창한 말인지 모르지만 종교인들이 서로 모여 이해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세계 평화의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꽃과 같았다. 세 종류의 꽃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중국 당나라 때 고사 ‘호계삼소(虎溪三笑)’에서 따온 이름. 당시 고승 혜원 스님은 산문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는 원칙이 있었다. 그는 도연명 육수정과 친밀한 관계였는데 하루는 3명이 절에서 즐겁게 담소를 나눴다. 밤늦게 혜원 스님이 두 사람을 배웅하는데 얘기에 취해 그만 산문 밖의 호계 다리까지 건너고 말았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세 사람은 크게 웃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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