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느티나무 '생사 기로'

  • 입력 2003년 6월 15일 16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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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웃 주민들에게 그늘과 휴식을 제공해주던 나무가 생사(生死)의 기로에 놓여 있다.

문제의 나무는 서울 중구 필동 2가 주택가 한 가운데 있는 느티나무. 이 나무가 뿌리 내리고 있는 100여평 규모의 필지에 대한 지분 소유권에 변동이 생기면서 오랜 세월 풍상을 견뎌온 고목(古木)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나무가 있는 필지는 국가 지분이 75평, 개인 소유 25평으로 이뤄진 공유지분. 빌라를 짓기 위해 나무 옆 필지를 구입한 사람이 나무가 있는 필지의 개인 소유 지분까지 사들이면서 구청에 국가 지분에 대한 매입 절차를 문의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나무 인근에 있는 주민 25명은 "주민들에게 그늘과 휴식을 제공하는 300년 이상 된 나무가 빌라 건설 때문에 없어져서는 안 된다"며 중구청에 토지의 국가 지분을 팔지 말 것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주민 이모씨(45)는 "국가 지분이 개인에게 넘어가면 나무가 베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지분을 팔아서는 안된다"며 "땅을 팔면 한 개인에게만 이익이 될 뿐 인근 주민은 피해를 입고, 나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지 지분을 사들인 김모씨는 "토지를 사들인다고 나무를 베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빌라가 들어서면 주차 공간이 협소해 질 것을 우려한 주민 몇 사람이 정당한 사유 재산권 행사를 막고 있다"고 말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에게 '공익'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보호할 방안을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하지만 국가 지분 토지가 개인에게 넘어가면 그 안에 있는 나무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토지에 대한 국가 지분을 파는 것은 재정경제부가 결정한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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