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총선 대합실’ 아니다

  • 입력 2003년 6월 9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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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비서관 행정관 10여명이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채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정 운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의 수족들이 벌써부터 총선에 신경을 쓰고 있다면 나라살림이 제대로 돌아갈지 걱정이다.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대통령을 보좌하는 일에 그만큼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총선 준비에 들뜬 어수선한 분위기는 다른 참모들에게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이 다루는 국가정책도 알게 모르게 자신들의 선거에 유리한 쪽으로 치우칠 소지가 적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측이 이들의 총선 출마 의사를 사전에 알고 경력 관리 차원에서 청와대에 기용했다면 잘못된 일이다. 국가 운영의 중심 기구인 청와대를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사적으로 이용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여야의 입장을 떠나 국정을 균형 있게 조감하고 조정하는 국가기구이지 특정 정파의 사적 기구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지금 총선 승리에 국정의 모든 중심을 두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집권당의 역할은 포기한 채 매일 계속되는 신당 논의의 배경도 그렇고, 얼마 전 대통령 핵심 측근인 이강철 민주당 조직강화특위 위원이 총선에 출마할 여권 후보로 현직 장관들의 이름을 노골적으로 거명한 일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측이 참모들을 대거 총선에 내보내겠다는 뜻까지 밝혔으니 청와대가 마치 ‘총선 대합실’이나 ‘의원후보 양성소’로 전락한 느낌이다. 집권측이 총선 승리에 매달려 청와대 자리까지 할애할 정도라면 예하 행정 부처의 안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기왕에 총선에 뛰어들기로 한 인사들은 하루라도 빨리 공직에서 물러나는 게 올바른 처신이다. 출마 공직자의 사퇴시한인 선거 두 달 전까지 기다리는 것은 청와대의 위세를 선거에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울러 집권측은 지금의 총선 집착이 국정 난맥을 더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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