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세이]임재훈/민물생선 날로 먹으면 癌 위험

  • 입력 2003년 6월 9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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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생선회를 무척 좋아한다. 특히 민물생선에 대한 애착은 유별나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간디스토마 보유국이 되었고, 담관암 발생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민물고기 중 참붕어 붕어 피라미 가물치 모래무지 잉어 등에는 기생충이 많이 붙어산다. 비교적 깨끗하고 차가운 물에 서식하는 빙어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물생선을 날로 먹는 사람은 흔히 1급수에만 사는 깨끗한 고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민물생선회를 먹는 순간 그 사람의 간과 담관 속에는 기생충과 기생충의 알, 배설물 등으로 심하게 오염된 3급수 담즙이 흐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민물생선을 날것으로 먹으면 기생충이 간으로 들어가 간디스토마증(간흡충증)이 생기고 이를 치료하지 않은 채 몇 십년 지나면 담관암에 걸릴 수 있다. 간흡충이 간 속에 오래 기생하면서 지속적으로 담관염을 일으키고 담석과 황달을 초래하기도 하며 일부 환자에서는 담관암으로 진행된다.

간흡충은 사람의 간 속 담관에 기생하는 1cm 내외의 버드나무 잎처럼 생긴 기생충이다. 한번 감염되면 인체 속에서 약 20∼30년간 기생하며 염증을 일으킨다. 기생충 한 마리가 하루에 알을 2000개 이상 낳는데, 이 알은 담관을 통해 사람의 배설물과 함께 시내나 강으로 흘러가 애벌레가 되어 민물고기의 살이나 비늘 속에 기생한다. 그러다가 사람이 날로 먹을 때 인체로 들어와 위와 십이지장을 거쳐 담관으로 침입해 최종 서식지인 간 내 담관에 자리 잡게 된다. 마치 연어가 작은 강에서 출발해 먼 바다로 나가 살다가 다시 고향인 강으로 회귀하듯 간흡충도 먼 여행 후에 출생지인 간 속 담관으로 회귀해 알을 낳고 기생하는 것이다.

담관 속에 기생충이 수천 마리가 있어도 환자는 증상이 없으므로 겉으로는 잘 모른다. 인체의 각종 효소를 생산하는 화학공장이자 독성물질을 제거하고 완화시키는 장기가 바로 간이다. 그런데 이곳이 기생충의 서식지가 돼 담관이 기생충 알과 배설물로 오염되고 염증을 일으켜 결국 암으로 악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1.4%인 약 60만명이, 특히 낙동강 섬진강 금강 유역 주민들의 30∼40%가 간흡충증에 걸려 있다. 한번 감염되면 치료 뒤에도 담관 염증이 지속되므로 이런 사람들을 합치면 간흡충증 환자는 약 100만명이 넘을 것이다. 이들은 담관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담관암 발생률은 서양에서는 10만명당 2명, 한국에서는 4.5명으로 2배 이상 높다. 필자의 연구 결과 담관암으로 대학병원을 찾은 환자 중 절반은 기생충 때문이었다.

담관암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민물생선을 날로 먹지 말아야 한다. 민물고기를 날 것으로 먹은 적이 있다면 빨리 병원에서 진단받고 구충제를 먹으면 된다. 다행히 간흡충증에 잘 듣는 특효약이 있어 한두 번 복용으로 깨끗이 치료할 수 있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 이상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선진국에서 식습관을 고치지 못해 간흡충증에 걸린 국민이 100만명 이상이란 것은 창피한 일이다. 몸에 좋다는 음식과 약은 유난스레 찾아다니면서 건강에 해로운 식습관을 고치지 못해 3류 국민으로 남아서야 되겠는가.

임재훈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교수·영상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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