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을 착한일에 썼다면…"

  • 입력 2003년 6월 6일 19시 07분


코멘트
《월스트리트 저널은 4일 한 ‘고뇌하는 영혼’의 이야기를 1면 기사로 올렸다. 마크 벨닉(56·사진)은 뉴욕의 맨해튼에서 널리 알려진 변호사. 87년 이란 콘트라 스캔들을 조사하기 위해 의회가 설치한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냉정하고 치밀한 능력을 발휘했다. 지금은 자신이 수석법률고문으로 근무하던 타이코사의 회계부정을 눈감아주고 120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돼 최고 25년형을 선고받을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나 표면에 드러난 인생 여정은 그의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에 비하면 덜 극적이다.》

뉴욕주 검찰은 1200만달러의 용처를 조사하던 중 200만달러가 가톨릭 계통인 토마스아퀴나스대와 가톨릭 자선단체에 흘러간 것을 발견했다. 이 밖에도 그는 액수가 확인되지 않은 많은 기부금을 가톨릭 단체에 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부정한 돈을 ‘신성한’ 목적에 쓴 것을 ‘선행’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하지만 이 돈은 이보다 더 큰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벨닉씨는 유대인. 정통 유대교의 신도회장을 4년간 지냈고 미 유대인위원회는 그의 자선을 높이 평가해 88년 상을 준 적도 있다. 그런 그가 가톨릭에 기부하다니….

월스트리트 저널은 200만달러의 행방을 조사한 결과 그가 몰래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실을 밝혀냈다.

97년의 일이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ABC방송 앵커 출신 데이비드 하트먼의 부인은 암으로 죽기 전 그에게 가톨릭 수사가 어깨에 걸치는 옷을 선물했다. 이 일을 계기로 촉발된 그의 가톨릭에 대한 관심은 우연한 계기에 증폭됐다. 그 해 말 그는 e메일 주소를 잘못 적어 신부 존 매클로스키에게 메일을 보내게 된다.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매클로스키 신부는 미 최대 증권회사인 메릴린치의 브로커 출신으로 미국의 많은 유명인사를 가톨릭으로 개종시켜 왔다. 벨닉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3년간의 종교적 갈등과 같은 유대인인 부인 랜디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 차례 세례식을 연기한 끝에 2000년 4월25일 세례를 받았다. 당시 세례식에 세 아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미사 도중 부인이 성당 안으로 걸어 들어왔을 때 그는 부인을 얼싸안았고 참석자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2001년 5월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그는 개종을 비밀에 부쳤다. 그는 매클로스키 신부에게 보낸 e메일에서 “부모님이 앞으로 120년을 더 사셨으면 좋겠지만 끝까지 나의 개종을 모르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가톨릭에 점점 빠져드는 동시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회사의 회계부정을 막기 위해 뛰어다녀야 했다. 회사는 그에게 더 많은 보너스로 유혹했고 그는 보너스를 가톨릭의 대의에 바쳤다.

그러나 지난해 타이코사는 형사고발을 피하지 못하고 회장 데니스 코즐로스키는 쇠고랑을 찼고 그도 비슷한 운명에 처해있다. 매클로스키 신부는 “하느님이 고통을 받도록 했다면 어떤 뜻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인생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