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

  • 입력 2003년 6월 6일 17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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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음 홍수원 외 옮김/407쪽 2만2000원 중심

지금까지 우리가 그에게 빚지고 있다고 생각해온 것은 그의 ‘우주관’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는 ‘세계관(Weltbild)’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독자는 물질과 에너지, 광속과 시간에 몰두해온 과학자가 인류 앞에 내놓는 실천적 지혜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기고문과 연설 등에서 추려낸 한 과학자의 ‘참여의 기록’이다. 그의 펜 끝은 소박하지만 집요하다. 그 끝이 겨누는 일점(一點)은 현대사를 광기와 파괴로 붓질하고 개인과 평화의 고귀함을 위협해온 ‘집단주의’다.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 철학자 오르테가이가세트가 ‘대중의 반역’에서 제기한 문제를 상기할 수 있다. 왜 ‘한 줌의 전문분야’에 몰두해온 과학자가 사회 윤리적 문제를 논하는가. 그럴 권위를 부여받는 것이 과연 마땅한가.

그 질문에 직접 답한 것은 아니지만 아인슈타인 자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침묵을 지킬 경우 공모의 죄책감을 느끼게 될 때만 나는 아주 가끔 의견을 밝혀 왔다’고. 그의 서한에서 ‘지적이며 윤리적인 작업(행위)’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그가 과학자의 직분을 세계윤리적인 것으로 인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의 ‘세계관’은 개인을 통해 비로소 국제정치와 인류를 향해 나아간다.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남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받는 능력이 아니다.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 나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수고에 빚지고 있는 만큼, 이를 돌려주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가 말하는 ‘남’ 속에 배타적 공동체와 집단은 설 자리가 없다. 남는 것은 개인과 전체로서의 인류공동체뿐이다. ‘개인만이 사유할 수 있으며 개인에게만 영혼이 주어진다.’ 이는 ‘성령은 개개인에게만 내려온다’(‘키랄레싸의 학살’)고 단언했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의 말을 상기시킨다.

‘개인’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어 ‘체제’에 대한 것으로 옮겨진다. ‘인간이 나날의 생필품을 조달하는 데 모든 힘을 소비한다면 다른 형태의 자유도 쓸모가 없다.’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은 개인의 사회의식을 마비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지적 때문에 그는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제거의 위협에 몰리기도 했다. 당시의 진상은 최근 간행된 ‘아인슈타인 파일’(이제이북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개인에 대한 그의 애정이 전체주의와 화합할 수 없음은 당연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파시즘과 볼셰비즘의 인간성 억압을 동등하게 질타했다. ‘사회주의는 자기 편이 아닌 사람을 모두 사악한 인간으로 낙인찍는다.’ 무엇보다도 계획경제는 ‘개인을 노예화’한다는 점을 그는 잊지 않았다.

홀로 선 인간의 고귀함을 강조해온 물리학의 거성은 전쟁이 끝난 뒤 전 세계의 존중과 비웃음을 함께 불러온 선언에 들어간다. 바로 미소영 3개국이 협력하는 ‘세계정부’ 수립의 요청이었다. 세계 안보를 위해 모든 군대를 다국적군으로 뒤섞어 재배치하자는 것.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피하기 위해 개별 국가들은 자결권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세계의, 특히 소비에트의 반응은 냉담했다. 세계정부란 전 세계로 투자대상 지역을 넓히려는 자본가들의 음모라는 것. 그의 이상론이 너무 시대를 앞서간 것일까.

1952년 신생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직을 제의받은 그가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도 당연했다. 그에게 유대인의 ‘민족국가’란 ‘민족주의’로부터 받은 아픔을 역으로 세계에 돌려주는 일처럼 보였을 것이다.

올해는 이 책의 원저가 나온 지 만 50년. 그와 동시대인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자신의 세대를 ‘진보의 천년왕국에서 나락으로 추락한, 모든 인류가 서서히 경험한 것을 한순간에 맛본 세대’로 규정했다. 세대의 아픔은 그 세대의 지혜를 낳았지만, 그후 세계의 ‘문명’ 지역이 반세기의 평화를 맛보는 동안 인류는 자신의 파괴적 본성에 대한 경계를 잊어가고 있다. ‘하나씩의 인간’ 및 ‘모든 인간’의 이름으로 평화를 호소한 과학자의 메시지가 지금도 새로운 것은 그 때문일까.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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