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측이 반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금통위원들이 만든 개편안이 한은 집행부가 마련한 안보다 조직축소폭이 크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지금 한국경제의 ‘키워드’는 구조조정이다. 조직의 군살을 빼고 효율성을 높이자는 게 구조조정의 한 목표다. 한은측도 축소형 조직개편의 불가피성은 인정한다.
문제는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고위간부는 “중앙은행의 조직개편은 기업의 구조조정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쉽게 뜯어고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업인들 제살깎기가 떡 먹듯이 쉬워서 하는 걸까.
그런 가운데 금통위는 23일 한은 조직개편안 확정에 앞서 조기퇴직 시행안을 통과시켰다. 최고 1억8천만원의 위로금을 조기퇴직의 대가로 제공한다는 게 골자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반발하는 한은 직원이 없다.
한 중간간부는 “위로금이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시중은행은 우리보다 더 많은 명예퇴직금을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한은은 시중은행과는 격이 다르다”고 말해오던 중앙은행 사람들이 위로금 액수를 놓고는 선뜻 시중은행을 비교대상으로 삼는 모습이다.
지금 우리 금융시스템은 한은이 돈을 풀더라도 유통이 되지 않을 만큼 꽉 막혀 있다. 신용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막힌 곳을 뚫기 위해서는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이 선결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은행에 대한 최종대부자인 한은의 구조조정은 모범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한은의 자세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대응이란 인상이 짙다. 금통위원들을 재정경제부의 꼭두각시라고 몰아세우는 태도도 그런 행태의 하나다.
이강운<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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