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강운/韓銀의 「제논 물대기」

  • 입력 1998년 4월 24일 19시 47분


한국은행의 조직개편안 결정이 세차례나 연기되는 진통을 겪고 있다. 금융통화위원회가 내놓은 개편안에 한은 집행부와 노조가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측이 반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금통위원들이 만든 개편안이 한은 집행부가 마련한 안보다 조직축소폭이 크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지금 한국경제의 ‘키워드’는 구조조정이다. 조직의 군살을 빼고 효율성을 높이자는 게 구조조정의 한 목표다. 한은측도 축소형 조직개편의 불가피성은 인정한다.

문제는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고위간부는 “중앙은행의 조직개편은 기업의 구조조정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쉽게 뜯어고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업인들 제살깎기가 떡 먹듯이 쉬워서 하는 걸까.

그런 가운데 금통위는 23일 한은 조직개편안 확정에 앞서 조기퇴직 시행안을 통과시켰다. 최고 1억8천만원의 위로금을 조기퇴직의 대가로 제공한다는 게 골자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반발하는 한은 직원이 없다.

한 중간간부는 “위로금이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시중은행은 우리보다 더 많은 명예퇴직금을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한은은 시중은행과는 격이 다르다”고 말해오던 중앙은행 사람들이 위로금 액수를 놓고는 선뜻 시중은행을 비교대상으로 삼는 모습이다.

지금 우리 금융시스템은 한은이 돈을 풀더라도 유통이 되지 않을 만큼 꽉 막혀 있다. 신용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막힌 곳을 뚫기 위해서는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이 선결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은행에 대한 최종대부자인 한은의 구조조정은 모범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한은의 자세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대응이란 인상이 짙다. 금통위원들을 재정경제부의 꼭두각시라고 몰아세우는 태도도 그런 행태의 하나다.

이강운<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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