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으로 외환관리 부실, 대기업의 연쇄도산, 기아사태 처리지연에 따른 국가신인도 하락, 무리한 종금사 인허가와 관리부실, 동남아 외환위기에의 대처미숙,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한 정책당국의 실기 등을 꼽았다.
2개월 동안의 특감을 통해 환란의 직간접적인 원인과 전개과정, 정책대응상의 문제점을 낱낱이 밝혀낸다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외환위기 의혹과 책임을 보다 철저하게 가리기 위해서는 검찰의 수사가 불가피하다. 감사원이 강경식전경제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전청와대경제수석을 직무유기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한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제 환란에 얽힌 의혹을 파헤치고 책임소재를 가리는 것은 검찰의 몫이 되었다.
감사원의 특감 결과만으로도 국민은 큰 충격을 받고 있다. 환란의 직접적인 원인이 단순한 정책 판단의 잘못만이 아니라 실상을 막판까지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직무유기에서 비롯됐음이 사실이라면 그대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정최고 책임자였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도 결코 자유롭지 못할지 모른다.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앞으로 검찰 수사가 무엇을 밝혀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해 주고 있다. 우선 당시 재정경제원, 청와대 경제비서실, 한국은행 등이 외환위기를 언제 인지했고 이를 상부에 보고한 시점이 어느 때인지를 밝혀내야 한다. 이는 관련자들의 직무유기여부와 책임소재를 가리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전정권 5년 동안 1천2백억달러나 늘어난 외채의 급증경위와 사용처를 밝혀내야 하고 지난해 10월 3백억달러에 이르렀던 외환보유고가 정작 외환위기에 봉착했을 때는 바닥을 드러낸 허술한 외환관리 진상도 파헤쳐야 한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격인 종합금융사의 무더기 인허가 및 외화차입과정과 용도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도 그대로 지나칠 수 없다. 국가신인도를 추락시킨 기아사태의 처리지연과 정책판단의 실패에 따른 책임도 따져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요청이 늦어진 것과 이행조건 협상과정의 문제점도 밝혀내야 한다. 환란의 원인을 가리고 상응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국민적 분노를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희생양 찾기가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