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호/金대통령의 자화자찬

  • 입력 1997년 7월 2일 20시 25분


하버드대 국제관계 계간지(하버드 인터내셔널 리뷰) 여름호에 실린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기고문은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다. 세상을 보는 지도자의 눈이 현실과 이처럼 괴리가 있을 수 있을까. 김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 투쟁―결실을 거두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자신의 재임중에 한국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두가지 과제를 동시에 달성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김대통령의 자평(自評)은 이렇게 이어진다. 『…문민정부이후 공정한 선거경쟁이 제도화됨에 따라 선거결과에 대한 시비는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됐다. 군 개혁을 통해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를 확립하는데 성공했으며 공직자재산공개 정치자금법 금융실명제 등을 통해 공정한 경쟁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부패구조를 척결하기 위한 첫 걸음도 내디뎠다…』 기고문만을 보면 김대통령의 재임 4년6개월여는 한국민주주의 황금기로 기록될 만하다. 그는 『민주화 과정에서 경쟁의 원칙이 사회 모든 분야에 확산됐고 민주주의는 더이상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며 『한국 민주화의 이같은 경험이 다른 개발도상국들에 희망의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대통령이 어떤 연유로 이런 글을 쓰게 됐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한국민중 몇명이 그의 평가에 동의할 것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노동법 날치기 통과와 한보스켄들, 현철씨 비리, 패거리 정치문화 등으로 얼룩진 한국정치의 모습이 그가 말한 한국민주주의 성공사례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화의 경험이 다른 개도국들에 희망의 메시지를 줄 것』이라는 대목은 차라리 희극적이다. 대통령의 아들이 비리혐의로 수감된 사실이 외국인들에게 과연 어떻게 비쳐질까. 지도자가 재임중 스스로의 「업적」을 되돌아보며 자찬(自讚)의 말을 늘어놓는 것을 본적이 없다. 정권에 대한 평가는 퇴임후 제삼자의 객관적인 눈을 통해 이뤄져 온게 관례였다. 그가 기고문에서 독재라고 비난했던 5,6공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이재호<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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