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시위 탄압은 한국인이 꾸며낸 거짓말” 가짜뉴스 퍼뜨린 일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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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3·1운동 왜곡 드러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건물. 총독부는 기관지인 영자 신문 등을 통해 3·1운동의 진상을 왜곡하려 했다. 동아일보DB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건물. 총독부는 기관지인 영자 신문 등을 통해 3·1운동의 진상을 왜곡하려 했다. 동아일보DB
“평균적인 한국인들이 거짓말쟁이라는 것은 악명 높은 사실이다.”

1919년 3·1운동이 벌어진 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가운데 하나인 영자 신문 ‘Seoul Press(서울프레스)’가 그해 3월 20일 보도한 기사 ‘잔인한 이야기’ 가운데 일부다. 국제 사회에 전해진 3·1운동과 일제의 탄압 양상을 과장이나 거짓으로 매도하고자 했던 것. 조선총독부가 대외적으로 3·1운동을 어떻게 왜곡하고 국제 여론전을 펼치려 했는지에 주목한 연구가 나왔다.

최우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독립기념관이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국제학술심포지엄 ‘국제사회는 3·1운동을 어떻게 보았는가’에서 ‘3·1운동과 조선총독부의 국제언론 대응’을 발표했다. 3·1운동 당시 고종 장례에 참여하러 온 해외 기자, 통신원들과 선교사들이 만세운동의 소식을 외부로 실어 날랐다. 발표문에서 최 연구위원은 “조선총독부는 ‘서울프레스’를 통해 국외 언론 보도를 직접 반박하려 했다”고 밝혔다.

발표문에 따르면 서울프레스는 3월 20일 기사에서 “한국인은 모든 종류의 소문을 제작하고 전파하는 데 능숙하다”고 매도했다. 일제 탄압의 양상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벨기에에서 행한 학살사건에 비유하거나, 여학생이 경찰서에서 고문당해 사망했다는 소식, 서대문감옥의 죄수들이 고문당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한 해외 언론 보도는 “모두 다 사실무근의 거짓말”이라고 이 기사에서 주장했다.

또 조선인의 만세운동은 ‘폭동’으로 묘사하는 반면 탄압했던 일본 군경은 ‘평화의 수호자’로 표현했다(5월 6일 ‘한국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 없음’ 기사).

서울프레스는 스코필드(1889∼1970)를 비롯한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진상이 알려진 수원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은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역시 공세적인 만세시위 탓에 발생했다고 왜곡했다. 학교 건물과 경찰서가 파괴되고 일본 경찰 2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한 명이 잔인한 방식으로 살해됐기에 진압부대가 운동 참가자들에게 적개심을 품었다는 것이다. 제암·고주리 학살은 무고한 양민에 대한 일제의 끔찍한 보복행위였다.

서울프레스의 야마가타 이소오 사장은 독립운동가들이 고문을 받았던 서대문감옥을 방문한 뒤 “감옥이 아니라 기술학교처럼 보인다”는 평가를 내렸다(5월 11일 ‘서대문감옥 방문’). 이에 스코필드 선교사는 감옥에서 몇 주 지내다 나온 사람을 만났는데 생가죽만 남아 있었다고 즉각 반박했다.

1905년 창간한 서울프레스는 이듬해 통감부가 인수한 뒤 일간지로 바뀌었으며, 1910년 이후 일제강점기 조선의 유일한 일간 영자신문이었다. 명목상 개인 경영의 형태였지만 여러 측면에서 ‘경성일보’ ‘매일신보’와 함께 총독부 기관지로 분류된다. 1919년 당시 신문 원본은 남아 있지 않아 1919년 3월 14일∼5월 16일 기사 가운데 25개를 모아 5월 20일 발행된 팸플릿 책자가 분석 대상이 됐다.

한국인은 미개하다며 여론전을 벌이기도 했다. ‘산림 파괴’(4월 6일)라는 기사는 한국인들이 일본 당국의 지시로 심긴 나무들에 적의를 품고 나무를 훼손하는 어리석은 행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라 다카시 당시 일본 총리는 1919년 3월 11일 국무회의 뒤 “외국인이 본 건(3·1운동)을 주목하고 있으니 잔혹하다든가, 가혹하게 추궁한다든가 하는 비평이 생겨나지 않도록 충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는 훈령을 조선 총독에게 보냈다. 서울프레스의 여론전 역시 그 일환으로 평가된다. 최우석 연구위원은 “서울프레스는 조선인의 피해를 ‘거짓말’로 몰아갔지만 부정할 수 없는 대규모 학살이 확인되면서 식민권력이 유지하려 했던 ‘문명적’ 통치의 이미지는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가짜뉴스#일제강점기#조선총독부#3.1운동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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