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하늘길 개척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영면에 들다
더보기

‘하늘길 개척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영면에 들다

뉴시스입력 2019-04-16 07:00수정 2019-04-16 15:32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16일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영결식 엄수
경기도 용인시 하갈동 신갈 선영에서 영면
운구행렬, 서소문빌딩·공항동 본사 등 돌아
국내 최초 민간항공사 대한항공의 성장과 국내 항공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끈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영면에 들었다.

지난 8일 타계한 조양호 회장의 영결식은 16일 새벽 6시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고인의 친인척과 임직원들은 6시10분께 지하 2층 장례식장 빈소에서 1층 영결식장으로 이동했다.

상주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첫째 아들이 위패를, 둘째 아들이 고인의 영정사진을 들고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다소 수척해진 모습의 조 사장과 상복을 입고 고개를 숙인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눈시울을 붉힌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이 뒤따랐다.고인의 형제들인 조남호 전 한진중공업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도 슬픔에 잠긴 표정으로 영결식장에 함께 올라갔다.

영결식은 고 조양호 회장에 대한 묵념 이후 진혼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불교식으로 치러졌다. 추모사를 맡은 석태수 한진칼 대표는 “그 숱한 위기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항상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길로 저희를 이끌어 주셨던 회장님의 의연하고 든든한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고 슬픔을 전했다.이어 “회장님이 걸어온 위대한 여정과 추구했던 숭고한 뜻을 한진그룹 모든 임직원이 이어 나가겠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주요기사


현정택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도 추모사를 통해 “해가 바뀔 때 마다 받는 소중한 선물인 고인의 달력 사진을 보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눈과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오늘 우리는 그 순수한 열정을 가진 조 회장을 떠나보내려 한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추모사 이후에는 지난 45년 동안 수송 거목으로 큰 자취를 남긴 조양호 회장 생전의 생생한 활동 모습이 담긴 영상물이 상영됐다.

이후 7시5분께 위패와 영정사진을 든 고인의 손자들과 조원태 사장, 조 사장의 부인, 조현아 전 부사장, 조현민 전 전무 순으로 영결식장에서 병원 주차장쪽으로 나왔다. 이어 관을 든 한진그룹 임직원들이 관을 운구했으며, 바로 뒤에는 조남호 전 회장과 조정호 회장 등이 뒤따랐다. 다만 전날 저녁 2시간 가량 빈소에 머물렀던 고인의 아내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원태 사장은 영정사진을 들고 운구차의 조수석에 앉았으며, 조현아 전 부사장과 조현민 전 부사장은 별도의 차량에 탑승했다. 병원 1층 주차장에는 임직원들이 탑승할 대한항공 회사차도 미리 주차돼 있었다. 운구 행렬은 가장 먼저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을 지났다. 오전 7시25분께 서소문 사옥 앞에는 검정 의복을 입은 임직원들이 미리 나와 있었다. 직원들은 조 회장을 모신 운구차가 지나갈 때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고인의 마지막길을 조용히 배웅했다.


이후 운구차는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 등 조 회장의 자취가 묻어 있는 장소로 향했다. 특히 대한항공 본사에서는 고인이 출퇴근 하던 길, 격납고 등 곳곳을 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직원들은 본사 앞 도로와 격납고 등에 도열하면서 고인의 안식을 기원했다. 운구차는 1981년부터 2017년까지 36년간 고인을 모셨던 이경철 전 차량 감독이 맡았다. 이 전 감독은 고인의 마지막 길도 본인이 모시고 싶다는 의지에 따라 운구차의 운전을 맡게 됐다.

한편 지난 8일 향년 70세의 일기로 별세한 고인은 국내 항공업계에서 ‘하늘길 개척자’로 불렸다. 1949년 고 조중훈 한진그룹 선대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창업주의 유업을 이어 ‘수송보국’의 일념으로 한진그룹을 국내 대표 운송·물류기업으로 키워냈다.

언론 인터뷰 등에서 드러난 고인의 지론은 ‘한우물만 판다’였다. 늘상 ‘수송 물류’를 그룹의 본류라고 강조하며, 질적으로 강한 기업을 위해 시스템에 의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스템 경영론’을 설파하기도 했다.고인은 지난 1974년 오일쇼크가 한창인 시절 대한항공에 처음 발을 들였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 2차 오일쇼크가 항공업계를 직격했고, 연료비 부담으로 주요 글로벌 항공사도 직원을 구조조정하는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직원을 감축하는 대신, 원가는 줄이되 시설과 장비 가동률을 높였고, 이러한 선택은 오일쇼크 이후 중동 수요 확보 및 노선 진출의 발판이 됐다. 고인은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도 자체 소유 항공기를 매각하고 재임차 등을 통해 유동성 위기에 대처하는 등, 경영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2002년 창업주 사후에는 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형제 간 다툼을 벌이며 ‘왕자의 난’을 벌였다. 이 때문에 고인은 그룹의 회장직은 쟁취했지만, 생전 형제들과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 장례 이틀째인 지난 13일 조남호 전 회장과 조정호 회장은 빈소를 찾아와 ‘맏형’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고인은 생전 자신이 겪었던 형제 간 갈등을 우려한 듯, 유언으로 “가족들과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나가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대외적으로는 항공업계 거목이란 평가 외에도 강직한 성품, 해외에서 국위선양에 기여한 재계 원로, 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높은 활동가 등의 평가를 받았다. 닷 새간 치뤄진 장례식의 방명록에는 2500명 이상이 이름을 적었으며, 최소 3000명이 다녀간 것으로 회사 측은 파악하고 있다. 고인의 빈소에는 각계각층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국내 4대 그룹의 총수를 비롯한 재계 거물들, 정치인 및 관가 인사들, 문화·스포츠계의 유명인들, 국제 항공업계 종사자 등이 다녀갔다.

고인의 장지는 장지는 선친인 고 조중훈 한진그룹 선대회장과 어머니 김정일 여사를 모신 경기도 용인시 하갈동 신갈 선영이다.


【서울=뉴시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