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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장준하 선생, 머리에 둔기 맞아 숨진 뒤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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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장준하 선생, 머리에 둔기 맞아 숨진 뒤 추락했다”

박희창 기자입력 2013-03-27 03:00수정 2015-05-2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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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진상조사위 첫 유골감식
유신 시절 숨진 장준하 선생(1918∼1975)이 “머리 가격에 의해 숨진 뒤 추락했다”는 유골 감식 결과가 제기됐다.

故장준하 선생
장준하 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는 26일 “지난해 12월부터 컴퓨터단층촬영(CT), 3차원(3D) 재현 등 장 선생 유골에 대한 감식을 통해 ‘타살 후 추락’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장준하 선생 암살의혹 규명 국민대책위원회와 민주통합당 장준하 선생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이 함께 구성했다. 장준하 선생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박형규 목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이 참가해 만들어진 단체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상임고문을 맡았다.

감식을 주도한 이정빈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장준하 선생의 머리뼈 함몰은 외부 가격에 의한 것”이라며 “가격을 당해 즉사한 이후 추락해 엉덩이뼈가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고 소견을 밝혔다.

이 교수는 “장 선생이 추락에 의해 머리뼈가 함몰됐다면 반대 방향으로 충격이 전해져 왼쪽 안와(안구 주위 뼈)가 함께 손상돼야 하는데 이 부분은 깨끗하다”며 “이는 추락보다 외부 가격에 의해 머리뼈가 손상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머리뼈와 엉덩이뼈가 추락으로 손상됐다면 어깨뼈도 부러져야 하는데 장 선생의 어깨뼈는 멀쩡했다”고 덧붙였다. 머리뼈를 가격한 물체에 대해서는 “두피 손상 부분이 좁은 것을 고려하면 동그란 모양을 가진 돌멩이나 아령 등이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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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사망 당시 검안 사진에 찍힌 장 선생의 몸에 출혈의 흔적이 거의 없는 점도 숨진 뒤 추락했다는 결과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머리에 강한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서 즉사하게 되면 목등뼈에 있는 혈액순환 기능이 멈춰 출혈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며 “출혈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볼 때 사망한 뒤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옛 시신 사진을 보면 추락하면서 바위 등에 긁힌 상처가 몸에 없어 장 선생이 약사봉 계곡에서 미끄러져 떨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1975년 8월 17일 장 선생 사망 당시 경찰은 등산 도중 단순 실족사로 사건을 처리했다.

장 선생의 유골을 직접 감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3년 민주당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 조사위원회’, 2002년 대통령 직속 제1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004년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 선생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조사를 벌였지만 장 선생 사망 당시 촬영한 검안 사진,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 등에 국한돼 이뤄졌다. 대통령 직속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유골 정밀감식을 위해 유족들에게 개묘를 요청했지만 유족들이 난색을 표해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2011년 8월 폭우로 경기 파주시 천주교 나사렛공동묘원 안에 위치한 장 선생 묘소 뒤편 석축이 붕괴돼 묘를 이장하게 되면서 유골 감식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준영 장준하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이번 유골 감식 결과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장 선생 타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라며 “감식 결과에 대한 그 어떤 법의학적인 논쟁도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장준하#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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