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파기에 미·일 “당혹과 실망”…‘뒤에서 웃는’ 중국

  • 뉴스1
  • 입력 2019년 8월 23일 14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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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체결 직전까지 갔다가 ‘밀실 추진’ 논란이 일자 중단을 발표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4년 뒤인 2016년 11월 속전속결로 체결하려 했던 데엔 당시 버락 오마마 미 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재균형(Pivot to Asia)’이나 ‘재균형(Rebalance)’정책을 추진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을 억제하고 북한 위협에 맞서는 차원에서 한미일 3각 공조 체제 복원에 공을 들여왔다. 한일 간 군사 교류를 막아왔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역사 인식 갈등은 2015년 12월 한일 간 합의로 봉합된 상태였다.

이 합의도 미국이 적극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지난 20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타결 뒤에는 미국의 적극적인 관여가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미측의 한미일 3각 공조 구축 행보에는 동북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지소미아 체결로 한국이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되는 것 아나냐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한일 정부가 지소미아 협정을 체결하자,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을 명분으로 내세운 MD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고 사실상 자신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각에선 일본이 미국의 전략에 발맞춰 군사대국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소미아를 활용하려 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당시 국방부 측은 “군사정보협정은 체결국가간 군사정보 공유와 보호를 위한 기본 틀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일본의 군사대국화,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지역 MD 체계 편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며 협정체결이 이러한 주장이나 우려에 대한 근거나 빌미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전일(22일) 전격적으로 지소미아 연장 불가를 결정한 뒤 미국과 중국, 일본이 보이고 있는 반응은 이 같은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신에 따르면 캐나다를 방문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한국이 지소미아와 관련해 내린 결정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린 (한일) 양국에 각각 계속해서 관여하고 대화를 할 것을 촉구해 왔다”며 “한국과 일본의 공동 이익이 중요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이는 미국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린 한일 양국이 관계를 올바른 곳으로 정확히 되돌리길 바란다”며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의 훌륭한 파트너이자 친구이고, 그들이 함께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미 국방부는 데이브 이스트번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갱신을 보류한 데 대해 강한 우려(strong concern)와 실망(disappointment)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린 한일양국과 가능한 분야에서 양자 및 3자 간 방위·안보협력을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매체들은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소식을 신속하게 전하면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의 공식 반응은 나오고 있지 않지만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입장에선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에 매우 고마워할 것이다“고 진단했다.

중국 입장에서 자국을 겨냥한 것으로 여겨지는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한 축인 지소미아가 파기됨에 따라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틈이 생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지소미아 체결 당시 중국 외교부는 ”평화와 발전의 시대 조류에 부합하지 않고 역내 각국의 공동 이익에도 맞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중국 왕이 외교부 장관은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한일 갈등을 중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왕이 부장은 21일 오전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한일 양측은 관심사를 서로 배려하고 건설적으로 이견을 해결해야 한다. 문제에 대해 타당하게 해결할 방안 찾기를 바란다. 3국이 단결해 협력하면 반드시 더 아름다운 미래 맞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겉으로는 한일 갈등 봉합을 중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심으로는 한미일 3국 동맹이 균열되는 상황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관측이 외교가에서 나온다. 지소미아 파기로 인해 한일간 안보갈등이 확전 상황으로 치닫으면 한미일 3국 동맹에 틈이 발생, 미국의 중국 견제가 느슨해 지고 동아시아 지각판에서 중국의 전략적 존재감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소미아 연장을 대체로 예상했던 만큼 한국의 전격적 결정에 당혹스럽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이례적으로 남관표 주한일본대사를 전일 오후 9시쯤 초치해 항의한 것은 우리 정부 결정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 진단이 나온다.

고노 외무상은 초치 직후 별도의 입장문을 내고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지역의 안전보장 환경을 완전히 오판한 대응“이라고 지적하며 ”극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한국 측에 현명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23일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방침과 관련 ”우려스럽게도 (한국에서) 한일청구권협정 위반 등 신뢰관계를 훼손하는 대응이 계속되고 있다“며 ”(한국에) 국가 간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아베 총리는 이것(한국의 종료 결정)을 헌법 개정 쪽으로 더 유리한 고지로 가는데 이용하려 할 것이다“며 ”일본이 저사세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한일 간의 대치국면은 장기화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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