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68>운명愛의 기초, 지혜와 열정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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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흐르게 하고 불은 타오르게 하라!

고미숙 고전평론가
고미숙 고전평론가
삶은 늘 혼란스럽다. 시비선악이 엇갈리기도 하고 희로애락이 뒤엉키기도 한다. ‘아, 저거다’ 싶어서 달려갔지만 막상 가 보면 외딴섬이거나 벼랑 끝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인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진리나 구원 같은 것은 저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거기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한’ 코스를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물론 함정이다. 아니 어쩌면 핑계일 수도 있다. 도피나 망각의 명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붓다와 공자, 그리고 예수 혹은 소크라테스, 인류의 고귀한 멘토들에겐 공통의 메시지가 하나 있다. “너를 구원하는 건 오직 너 자신뿐이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것을 향한 구체적 활동지침이 바로 ‘지혜와 열정’이다.

지혜와 열정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몸의 원리다. 먼저 지혜는 물(水)이다. 오장육부 가운데 신장의 기운에 해당한다. 신장의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정력의 원천이다. 존재를 뒤흔드는 폭풍 같은 에로스도, 죽음을 불사하는 전투적 의지도 다 여기에서 비롯한다. 무엇보다 인생과 자연에 대한 지혜가 샘솟는 곳이기도 하다. 신장의 물이 척추를 타고 올라가서 뇌를 흠뻑 적셔 주어야만 뉴런들의 활발한 접속과 변용이 가능하다. 그것을 일러 이른바 ‘상상력’, ‘창조력’이라고 한다. 결국 뇌 또한 신장의 연장인 셈이다. 따라서 지혜를 닦는 것은 곧 신장과 뇌로 이어지는 생리적 루트를 활성화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지혜의 물을 활발한 에너지로 변환하는 과정, 곧 열정이 필요하다. 심장의 화(火)가 그것을 주관한다. 신장의 물을 펌프질하여 전신에 공급해 주는 것이 심장이 하는 역할이다. 이 불꽃이 정미하게 타오르면 열정이 된다. 제멋대로 타오르면 허열(虛熱)이 된다. 열정은 솟구치지만 허열은 망동한다. 허열에서는 아무런 창조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방 아니면 표절. 열정과 허열을 구별하지 못하고, 지혜와 잔머리를 혼동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지혜와 열정은 서로 맞물려 있다. 물이 있어야 불이 정미하게 타고 불이 있어야 물이 고이지 않는 것처럼. 양생술의 핵심인 ‘수승화강’이란 지혜와 열정의 활발한 순환과 다름없다. 물론 출발점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연암과 다산의 경우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흔히 둘을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전자가 지혜의 화신이라면 후자는 열정의 투사다. 연암은 독창적이고 다산은 박학하다. 전자의 미학이 유머와 역설이라면, 후자는 언제나 격정의 파토스를 연출한다. 전자가 지혜를 통해 열정을 변주했다면, 후자는 열정을 통해 지혜에 도달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순환과 변주는 연암과 다산 같은 거인들만의 몫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래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 지혜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열정을 통해 그 네트워크에 힘을 불어넣는 것, 이런 과정을 밟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는 없는 법이므로. 그렇다. 지혜와 열정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특권이자 소명이다. 그러니 물은 흐르게 하고 불은 타오르게 하라! 운명애를 터득하는 길도 다만 거기에 있을 뿐이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고미숙#몸과 우주#운명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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