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영 기자의 보너스 원샷]‘단신들의 덩크’ KBL 불쏘시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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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은 SK 감독을 볼 때마다 또렷이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1993∼1994 농구대잔치에서 연세대 소속이었던 문 감독이 터뜨린 ‘리버스 덩크슛’이다. 당시 속공 패스를 받은 문 감독은 190cm의 키에도 180도로 몸을 회전시키며 미국프로농구(NBA)에서나 보던 리버스 덩크슛을 성공시켰다. 그 순간 잠실학생체육관을 채운 소녀 팬들은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키가 크지 않은 선수의 덩크슛은 매번 화제가 된다. 키가 183cm인 이상민 삼성 감독이 현역 시절 프로에서 시도한 1개의 덩크슛도 오래도록 화제가 됐다.

국내 프로농구에서 덩크슛을 기록한 61명의 국내 선수 중 중 190cm 이하 선수는 7명이다. 김선형(SK)은 187cm의 키로 통산 29개의 덩크슛을 성공시켰다. 키가 185cm인 양우섭(LG)도 통산 6개의 덩크슛을 기록하고 있다. 정성수(LG)는 174cm의 키로 덩크슛을 꽂아 넣는 훈련 장면이 공개돼 화제가 됐었다. 김경언(SK·185cm)은 2010년 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덩크슛 왕에 오른 아트 덩크슛 1인자다.

요즘 프로농구에서 180cm대 단신 국내 선수들의 덩크슛은 희귀한 장면이 됐다. 정성수와 김경언은 실제 정규리그 경기에서는 덩크슛 기록이 없다. 한 구단 관계자는 “부상 위험 때문에 단신 선수들의 덩크슛을 감독들이 원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가드들이 덩크슛 실력을 자랑할 기회가 경기 중에 생겨도 외국인 선수나 센터들에게 양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양우섭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서 기회가 생기면 되도록 덩크슛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상대팀 입장에서는 2점 이상의 점수를 내준 것 같은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 이 때문에 파울로 끊거나 적극적인 수비로 덩크슛을 경계한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10개 가까이 덩크슛을 넣고 싶다”고 말했다.

올 시즌 덩크슛 재능이 뛰어난 단신 유망주가 프로에 입단했다. 지난달 26일 신인 드래프트에서 오리온의 지명을 받은 경희대 성건주는 대학 시절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덩크슛 기술만큼은 타고났다. 187cm의 키지만 연습 때 힘들이지 않고 고난도 덩크슛을 꽂을 정도로 탄력이 넘친다.

최근 개막한 NBA는 단신 선수들의 덩크슛 퍼레이드로 흥을 내고 있다. 190cm가 채 못 되는 오클라호마시티의 러셀 웨스트브룩은 벌써 4개째 덩크슛을 성공시켰다. 175cm의 아이제이어 토머스(보스턴)는 지난 시즌보다 덩크슛 수를 늘리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과감한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심이 부럽다.

한 구단 코치는 “미국 연수를 갔더니 덩크슛을 성공시키면 자신감도 커질 수 있다며 지도자들이 장려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 고참 선수는 “국내에서는 덩크슛을 하려다 실패하면 큰 비난을 받는다. 소위 겉멋 든 놈이라는 표현도 따라다닌다. 하지만 단신 선수들이 덩크슛에 성공하면 노마크나 속공 상황을 더 적극적으로 즐기게 된다”고 말했다.

가볍게 림에 올려놓는 레이업슛이나 덩크슛은 같은 2점짜리 플레이지만 팬들에게 남기는 인상은 확실히 다르다. 선수가 얻는 자신감도 천지 차이다. 국내에서도 정성수 김경언 성건주 등이 공식경기에서 생애 첫 덩크슛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고 싶다. 단신 선수들의 덩크슛으로 프로농구 열기를 지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덩크슛#단신#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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