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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온 파일럿과 스테이크 소스[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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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온 파일럿과 스테이크 소스[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19〉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입력 2019-08-02 03:00수정 2019-08-0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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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인류가 바다를 이용한 이래 바다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바다 말들이 육지에 올라와 일상생활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남기게 된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단어가 파일럿(pilot)이다. 선박 운항 중 가장 위험한 시점은 입·출항할 때다. 항구는 좁고 얕다. 입·출항하는 선박 수도 많다. 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이유다. 그래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항해 전문가에게 입·출항을 일임하게 되었다. 그를 파일럿이라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16세기에 유럽에서 파일럿이 생겨났다. 몇 백 년 후에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교통수단이 되면서 파일럿이라는 용어를 차용했다. 파일럿의 우리말은 도선사(導船士)다. 최고 연봉을 받고 직업 만족도가 1, 2위를 다투는 직종이라 이제 많이 알려졌다. 수업시간에 나는 항상 신나게 말한다. “여러분, 도선사는 서울 강북에 있는 절 이름(도선사·道詵寺)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시길”이라고.

해운 종사자들도 무심코 지나치는 용어가 있는데 바로 A1이다. 16세기 대항해 시대, 유럽의 화주들은 비싼 화물이 바다에서 침몰하면 큰 손해를 보게 되므로 선박의 안전을 원했다. 그래서 공익단체를 만들어 어떤 선박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확인하고 증서를 발행해 주고, 그 단체에 선박이 가입하도록 했다. 이렇게 가장 먼저 생긴 것이 로이드 선급협회(船級協會)다. 선박의 안전성은 두 가지 측면을 봤다. 하나는 선체(船體)다. 선박의 외판 등이 두꺼워 해수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인지를 보았다. 다른 하나는 기관, 돛 같은 속구다. 전자는 A, B, C로, 후자는 1, 2, 3으로 등급이 매겨졌다. 그래서 두 가지를 합친 A1 등급의 선박은 안전성이 최고로 보장된 선박이다. 선급협회는 각국 중요 항구에 검사원을 두고, 그들로 하여금 선박에 올라가서 검사를 한 뒤 본사에 검사 결과를 보고하게끔 했다. 그 뒤 본사에서 해당 선박에 대한 등급을 이같이 달아주는 것이다. 육지에서는 스테이크를 먹을 때 볼 수 있는 양념 소스에 A1이라는 상표를 붙였다. 자신의 소스가 최고 품질이라는 뜻으로 바다 용어인 A1을 차용한 것이다.


육지 용어가 바다 용어가 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히말라야(Himalaya)다. 운송인은 화주와 운송계약을 체결하면서 자신의 화물에 대한 책임을 일정한 액수로 제한하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하역작업도 운송인의 의무다. 통상 자신이 직접 처리하지 않고 하역회사에 맡긴다. 이 작업 중 화물에 손상이 가면 화주와 하역업자 사이에는 운송계약관계가 없기 때문에 화주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책임 제한을 주장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될까? 운송인과 화주가 운송계약 때 그렇게 하기로 약정을 체결하면 된다. 이런 내용을 가지는 약정을 히말라야 조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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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히말라야인가? 이런 일이 처음으로 발생한 선박의 이름이 ‘히말라야호’였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조항이 무엇이냐’는 해상법 수업시간에 단골로 내는 시험문제다. 걸작인 답변이 나왔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산맥 이름’이라고. 감점 처리를 했지만 유머에 매료되었다. 그 후 수업 때마다 이 에피소드를 사용한다. 감점은 일시적이지만 유머는 영원하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바다#육지#파일럿#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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