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퍼펙트게임을 기다리는 자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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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의 류현진이 27일(한국 시간)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 중 더그아웃에서 홀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날 7회까지 퍼펙트 기록을 이어간 류
현진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팀 동료들은 그를 애써 외면했다. SPOTV 중계화면 캡처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27일(한국 시간)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 중 더그아웃에서 홀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날 7회까지 퍼펙트 기록을 이어간 류 현진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팀 동료들은 그를 애써 외면했다. SPOTV 중계화면 캡처
기립박수. 7회 초 LA 다저스 류현진이 상대팀 타자를 투수 앞 땅볼로 처리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오자 다저스타디움을 채운 수많은 관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7회까지 류현진이 허용한 안타, 볼넷, 실점은 모두 제로. 145년 전통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단 23차례밖에 나오지 않은 퍼펙트게임까지 단 6개의 아웃카운트만이 남았습니다. 5회, 6회, 7회. 경기가 진행될수록 관중의 환호는 높아만 갔습니다.

정작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차분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수고 많다며 하이파이브를 건넸을 팀 동료들은 하나같이 그와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평소 장난기 많기로 유명한 류현진의 절친 야시엘 푸이그도 이날만큼은 그를 애써 외면한 채 경기장만 바라봤습니다. 퍼펙트게임에 대한 기대의 말이 혹여 류현진의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팀 동료들은 알고 있었던 겁니다. 류현진도 팀 동료들의 무언(無言)의 응원을 이해했다는 듯 좋은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도 무언의 응원은 이어졌습니다. 7회가 지나서야 류현진의 승승장구 소식을 접한 저는 주변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페이스북을 켰지만 퍼펙트게임과 관련된 게시물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평소 류현진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제 타임라인은 늘 경기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던 터라 이 같은 상황을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사회인 야구팀원들과 만든 단체 카톡방에 “류현진, 7회 퍼펙트 진행 중. 다들 경기 보고 계세요?”라는 메시지를 띄웠다가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너의 그 말이 혹여 류현진 선수에게 부담을 줄지도 모르니, 우리는 그저 차분하게 결과를 지켜보자”는 이야기가 돌아왔습니다. 이날 하루에만 저 같은 희생양(?)을 여럿 발견했습니다. 모 포털 사이트의 문자중계를 통해 경기를 보던 한 누리꾼은 “이러다 류현진이 큰일 내는 거 아닌가요?”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다른 누리꾼들로부터 “설레발치지 말라”는 집중 폭격을 맞아야 했습니다. 8회초 신시내티 레즈의 토드 프레이저가 2루타를 쳐 퍼펙트 기록이 깨질 때까지 누리꾼 모두는 더그아웃에 서 있는 야시엘 푸이그, 후안 우리베가 됐습니다.

때로는 그저 지켜보는 것이 말보다 더 큰 응원이 될 때가 있습니다. 지난달 세월호 참사 당시 절망적인 사고 상황만큼이나 모두를 힘들게 한 건 ‘서툰 말’이었습니다. 장난삼아 보낸 초등학생의 문자,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한 20대 여성의 거짓 인터뷰, 상황을 가리지 못하고 ‘장관님 오셨습니다’라고 말한 어느 한 보좌관의 서툰 표현은 서로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정작 ‘탈출하라’는 말이 절실했던 세월호 속 학생들에게는 누구 하나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으면서 말이죠.

“승리로 배우는 것은 적다. (그러나)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You can learn a little from victory. You can learn everything from defeat).”

뉴욕 자이언츠의 전설로 불리는 크리스티 매슈슨(1880∼1925)의 말입니다. 퍼펙트한 인생은 퍼펙트게임보다 훨씬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그라운드 곳곳에 돌덩이도 많고 바람의 방향도 종잡을 수 없습니다. 아웃카운트는 몇 개를 잡아야 하는지, 스트라이크와 볼은 무엇으로 구분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습니다. 애초부터 퍼펙트한 인생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퍼펙트한 인생을 꿈꾸는 건 오늘의 참담한 경험이 좀더 나은 내일의 밑거름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서투른 말을 줄여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책임지지 못할 말로 상처를 줄 바에야 그저 지켜보는 게 나을지 모릅니다.

강홍구 산업부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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