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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민주당 最惡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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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민주당 最惡의 해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입력 2014-12-11 03:00수정 2014-12-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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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연에 대해 국민들은 ‘실망’ 넘어 ‘무관심’으로
유엔의 대한민국 승인 얻어낸 66년 전 민주당 창당 주역들은 정통성-체제 수호에 앞장서
요즘은 북한 인권법 가로막고 ‘북한 찬양’ 거드는 기막힌 모순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새정치민주연합에 2014년은 다시 떠올리기 싫은 한 해로 기억될 듯하다. 안철수 세력과 힘을 합쳐 새로운 깃발을 올렸으나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에서 잇따라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정당 이미지가 끝 모르게 추락한 일이었다. 여러 예를 들 것도 없이 김현 의원이 ‘힘없는 서민’인 대리기사를 폭행한 사건에 연루되고, 누가 들어도 뻔한 거짓말을 한 게 민심을 더욱 등 돌리게 만들었다.

최근 정국을 뒤흔든 정윤회 파문에서도 새정연의 존재감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올해 8월 발족한 새정연 비상대책위원회가 요즘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대부분 관심이 없다. 새정연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실망’을 넘어 ‘무관심’의 단계로 가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마침 내일은 한국이 유엔의 승인을 받은 지 66주년이 되는 날이다. 1948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에서 한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았다. 유엔의 승인은 1950년 6·25전쟁 때 유엔군의 참전을 이끌어내고 한국을 공산화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새정연은 이때로 시계를 돌려볼 필요가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빈손뿐이었던 신생국가 한국은 유엔 승인을 얻기 위해 프랑스 파리 현지로 대표단을 파견한다. 수석대표는 장면, 차석대표는 장기영, 고문은 조병옥 정일형 등이었다. 이들은 각국 대표를 만나 설득도 하고 하소연도 했다. 승인을 결정하는 12월 12일은 일요일인 데다 비까지 내렸다. 우리 대표단은 혹시라도 정족수 미달이 될까 조마조마했으나 결과는 찬성 48표, 반대 6표, 기권 1표라는 압도적 가결이었다. 회의가 열렸던 장소의 이름을 따 ‘사요 궁(宮)의 기적’으로 불린다. 소련 중국 등 한반도 북쪽을 온통 장악한 공산 진영에 맞서 한국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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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대표단 멤버들은 1955년 민주당을 창당하는 주역이 된다. 새정연이 ‘60년 전통’을 거론할 때 출발점이 되는 당이다. 이들 중 장면은 반(反)이승만 투쟁의 선봉에 섰고 1956년 부통령에 당선됐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가 그의 유명한 구호였다. 조병옥은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갑자기 타계했다. 이들의 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새정연의 뿌리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톨릭에 입교할 때 장면은 대부(代父)를 맡았다. 김대중의 정치적 멘토가 장면이었다. 조병옥의 아들 조윤형 조순형은 대를 이어 야당에서 활동했고, 정일형의 아들 정대철, 손자 정호준은 3대에 걸쳐 민주당 국회의원이 됐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새정연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체제를 수호한다는 전제 아래 정당 활동이 이뤄져야 어울린다. 그러지 않으려면 ‘60년 정통 야당’ 같은 말은 아예 꺼내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놀라웠던 것은 좌편향 교과서에 대한 입장이었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내용 중에는 1948년 유엔 승인에 대한 의도적인 왜곡이 들어 있었다. 유엔 결의문대로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써야 할 것을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기술한 교과서도 있었다. 북한을 편들고 남한을 깎아내린 것이다. 새정연으로선 무엇보다 장면 조병옥 같은 민주당 창당 주역의 활약과 공로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속 의원들은 문제 제기는커녕 오히려 좌편향 교과서를 편들고 있었다.

새정연 의원 중에는 6·25전쟁의 영웅인 백선엽 장군을 ‘민족 반역자’로 몰아세운 사람(김광진)이 있었는가 하면 탈북자를 변절자로 지칭한 이(임수경)도 있었다. 북한 찬양 논란을 빚은 신은미 씨를 국회로 초청해 토론회를 열어주려던 의원(홍익표)도 있었다. 북한인권법을 10년 동안 막아선 것도 새정연이었다. 장면 조병옥 선생이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탄식할지 기막힌 일이다.

1948년 파리로 날아간 한국 대표단은 먼저 네덜란드 헤이그의 이준 열사 묘소를 찾았다. 이준은 1907년 헤이그에서 조선 독립을 만방에 호소하려 했다가 좌절되자 순국했다. 묘소 앞에서 장면 등은 “유엔 승인을 얻지 못하면 이준 열사의 뒤를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대한민국을 지키려 한 것이다. 새정연이 달라지려면 이에 못지않은 자세로 이들의 정신적 유산을 계승해야 한다.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일일 터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새정치민주연합#북한 인권법#민주당#좌편향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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