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우선]초등 입학 부모에게 돌봄 휴직을 허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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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이번 ‘광화문에서’ 칼럼은 광화문이 아닌 ‘집에서’ 썼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3월 한 달간 회사를 휴직했기 때문이다. 휴직을 결정하기까지 내적 갈등이 많았다. 교육팀장을 맡으면서 알게 된 교육계 지인들은 아이의 초등 입학이 최대 고비라며 휴직을 권했다. 한 가까운 교사 지인은 ‘휴직을 안 하면 인생의 후회로 남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동료 기자들에게 업무 부담을 주는 것도 싫었지만 낮밤 없는 기자의 삶에서 입학할 때라도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면 평생 아이에게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안 했으면 애는 둘째 치고 내가 못 버텼겠다’ 싶은 상황이 많다. 초등 입학 자녀를 둔 모든 부모에게 국가가 한 달간의 휴직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여성 경력 단절 및 저출산 심화를 막기 위한 ‘0순위’ 정책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입학식 날부터 벌어졌다. ‘입학식만 치르면 다음 학교 방문은 3월 셋째 주 학부모 총회쯤이겠지’ 생각했는데 “내일 오전에는 학부모 연수가 있으니 강당으로 모이라”는 공지가 울려 퍼졌다. 휴직 안 했으면 어쩔 뻔. 아니나 다를까 당장 오후에 같은 워킹맘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야, 너희 애 학교도 학부모 연수한대? 나 내일 어떻게 해? 멘붕이야!”

다음 날에는 대학교 수강 신청보다 치열하다는 방과 후 수업 수강 신청이 있었다. 친한 동네 선배맘 왈 “인기 강좌는 3초면 마감되니 긴장하라”고 했다. 아이는 ‘마술’과 ‘줄넘기’ 수업을 꼭 듣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등교한 터였다. 심장이 쫄깃해졌다. 만약 실패하면 다음 방과 후 신청이 있기까지 석 달간 ‘고개 숙인 엄마’로 살아야 했다. 신청 개시 시간 20분 전부터 정좌하고 앉아 초속 클릭을 시도한 덕에 ‘마술’ 신청에 성공했다. 하지만 ‘줄넘기’ 수강은 실패했다. 만약 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했을 게 뻔했다. 쏟아지는 보도자료와 브리핑, 취재 스케줄을 감당한 뒤 저녁 늦게 퇴근 즈음에나 ‘맞다! 오늘 수강 신청이었는데!’ 하고 소리쳤을 것이다.

적어낼 서류와 준비물도 계속 쏟아졌다. 엊그제는 ‘쓰레받기 길이가 15cm인 미니 빗자루 세트’를 사기 위해 동네 문방구와 마트 4곳을 헤맸다. 학교 유인물에는 ‘너무 커도, 작아도 안 좋고 15cm 정도를 권한다’고 돼 있었는데 품절인지 어딜 가도 10cm와 20cm만 있었다. 워킹맘의 지원군 ‘○팡 ○켓배송’도 싹 다 일시품절이었다. 만약 휴직하지 않았다면 오후 10시나 돼서야 호러영화의 주인공처럼 문을 연 문방구를 찾아 헤맸을 판이다.

엄마가 아닌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힘든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워킹맘의 자괴감은 대단한 일에서 오는 게 아니다. 아이가 홀로 빗자루 없이 등교해야 할 때, 제출 서류를 며칠째 못 보낸 걸 알았을 때, 아침부터 밤까지 야근 후 다시 새벽 2시까지 대리운전을 뛰는 심정으로 일과 육아를 해내도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라는 말을 반복해야 할 때, ‘아무것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나는 과연 무엇인가’란 감정과 함께 무너지는 것이다. 지난해 2, 3월에 회사를 그만둔 초등 저학년 워킹맘 1만5841명(보건복지부, 경력단절여성 실태조사)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이런 아픔이 있었으리라 본다.

휴직을 해 보니 한 달이라는 시간만으로도 워킹맘에게는 경력 단절의 고비를 넘길 처방이 되는 듯하다. 매일 아침, 배낭을 메고 교문 속으로 사라지는 작은 등을 지켜보는 것, 학교를 마치고 나온 아이의 손을 잡는 것, 그 시간 속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위안을 얻는 것이다. 160조 원을 쏟아붓고도 허탕 친 현금지원성 정책보다 초등 입학 한 달 휴직이 더 사려 깊은 저출산 대책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초등학교 입학#휴직#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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