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황태연]왜 지금 다시 공자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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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정치철학 전공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정치철학 전공
21세기 들어 동아시아의 급부상과 함께 공자 열풍이 거세다. 국내외에서 공자 관련 출판과 모임이 날로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16, 17일에는 서울에서 유교문화권 6개국 학자들이 대거 참가한 ‘공자르네상스 국제학술회의’(성균관대 유학대학 주최)가 열렸다. 여기서 무려 33편의 논문이 쏟아졌다.

또 지난달 8일에는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2020년까지 ‘전면적 소강(小康)사회’ 건설을 완료하고 2021년부터는 모두가 잘사는 ‘대동(大同)사회’ 건설을 개시한다는 장기발전계획이 발표됐다.

일찍이 1978년 중국 공산당은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로 발전한다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공식 폐기한 데 이어, 1979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소강사회’를 처음 언급하고, 이어서 1987년에는 배부른 ‘온포(溫飽)’→‘소강’→‘대동’사회로 발전하는 3단계 발전론, 즉 이른바 ‘삼보주(三步走)’를 제시했었다. ‘소강’과 ‘대동’은 공자 고유의 개념들이다. 이번 장기발전계획은 이 공자주의 역사관을 재확인하고 더 크게 알린 것이다.

공자는 ‘소강’을 세습·사유제가 정착되고, 무력과 무용, 예법질서, 각자의 합당한 몫을 정하는 소의(小義), 가족을 챙기는 소인(小仁)이 중시되는 사회로 정의했다. 반면 ‘대동’은 임금과 치자(治者)가 현자와 능력자 중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대인(大仁)과 대의(大義)의 원리에 따라 화목과 영구평화가 달성되고, 자기만 쓰는 ‘사유(私有)’와 반대로 기꺼이 남과 나눠 쓰는 ‘개인 소유’에 힘입어 완전고용과 보편복지가 실현된 신분 차별 없는 무계급 사회다.

공자는 무궁무진한 ‘혁신의 힘’ 품어

이 대동의 소유 원칙은 마르크스의 ‘사회적 소유’(공동 ‘점유’에 기초한 ‘개인 소유’)와 유사하다. 이런 관점에서 ‘공자 르네상스 학술회의’에 참가한 장시핑(張西平) 베이징외국어대 교수는 “공자의 대동사회는 마르크스의 공산사회와 같다”고 주장했다.

최근까지도 들리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막말, 그리고 ‘양물(洋物) 숭배’ 풍조를 상기할 때, 오늘날 공자 열풍은 일대 ‘사상혁명’이라고 할 만하다. 성리학은 공자철학을 형이상학적 이기론(理氣論)과 예법의 형틀로 재단하여 왜소화시키고 대동이념을 제거한 독단론이었다. 그간 우리는 성리학을 공자철학으로 오해하여 공자 자체를 외면해 왔지만 21세기 공자 열풍은 ‘동아시아의 스콜라철학’인 성리학의 독단에서 해방된 상태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 공자철학이 성리학적 공리공담 속에 거의 질식된 시기인 17, 18세기에 서구에서는 정반대로 공자 열풍이 오늘날보다 훨씬 더 거세게 일어났었다. 유럽에서 17세기부터 시작된 공자경전 번역은 18세기 초까지 다 완료되었다. 그러나 무신론으로 의심받은 성리학은 번역에서 제외되었고, 이 때문에 유럽에는 성리학으로부터 순화된 공자철학만이 전해졌다. 이 순수한 공자철학은 유럽인들에게 일대 ‘충격’을 줬고, 이때부터 유럽은 스콜라·데카르트 철학으로부터 해방되어 사상·문화적으로 개화되기 시작했다.

존 웹과 윌리엄 템플은 공자경전을 직접 읽고 탄복했고, 수많은 중국 보고서들에 소개된 과거제·관료제·내각제 등 중국의 국가제도를 높이 찬양했다. 특히 템플은 1679년 영국에 중국식 내각제를 도입했다. 피에르 벨과 볼테르는 공자의 사상자유론과 3000여 개의 종파가 공존했던 동아시아의 무제한적 종교 자유의 현실로부터 유럽의 근대적 종교 자유와 관용사상을 발전시켰다. 또 프랑수아 케네,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는 공맹과 사마천의 양민(養民)·교민(敎民)·무위(無爲)시장·농본주의로부터 자유시장·복지국가·중농주의를 개발해 냈다. 서양의 신분해방, 보통교육, 3단계 학교도 세습귀족을 인정치 않은 중국의 신사(紳士)제도와 서당·향교·대학의 만민교육제로부터 유래했다. 한마디로 유럽의 근대화는 동아시아에서 기원한 것이다.

200년 전 유럽에서 ‘순화된 공자철학’이 스콜라철학을 분쇄하고 서구사회를 개화시킨 반면, 공자의 연고지에서 공자철학이 유교 문명권을 개화시키기는커녕 성리학의 권력에 막혀 자체 순화마저 봉쇄당한 것은 진짜 ‘역사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여기서 배우는 것은 공자가 타 문명도 개화시킬 만큼 무궁무진한 혁신의 힘을 품은 ‘사상의 보고’라는 것이다.

덕치철학이 세계 문명 이끌 것

오늘날 다시 일어나는 공자 열풍은 복고가 아니라 바로 이 ‘혁신’을 지향하고 있다. 그 초점은 ‘순수이성’을 위험시하고 ‘감성과 경험’을 인식의 기초로 중시하는 공자의 경험론이고, 도덕과 정치를 공감(‘恕’)으로 일이관지하는 그의 공감이론이고, 공감의 힘으로 모든 벽을 허무는 ‘대인·대의’의 무위천하를 주창하는 그의 공감도덕론과 덕치철학이다.

여기에 공자철학의 현대성과 미래성이 있다. 프란스 더발 등 서양의 최신예 공감이론의 대가들이 다시 공맹을 찾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공감의 시대’인 오늘날, 공자의 공감·덕치철학은 동아시아의 연대와 번영의 철학이고, 장차 동아시아가 덕치로 이끌 세계 제(諸) 문명의 공영 원리가 될 것이다. 미래는 ‘공자의 시대’다.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정치철학 전공
#공자#중국#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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