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석호]인구학에 길을 묻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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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65세 이상 노인들 늘어나는데… 인구학의 ‘생산가능인구’ 맞지 않아
경제 망치는 건 인구절벽 아닌 정치… 공포 조장하면 더 중요한 현실 오도
공정-공평한 기회 제공이 우선돼야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국회에서 벌어지는 선거법과 공수처법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정당 간 전투와 비교하면 한가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우리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인구위기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실 선거법 개정도 인구구조의 변화에 맞춰 한 표의 가치를 최대한 존중하기 위한 노력이다.

인구학자들은 인구절벽을 대한민국의 실질적 위기라고 주장한다. 가장 활기차게 일할 15∼64세가 줄고 가족 부양과 자식 교육에 돈을 다 써버린 65세 이상의 노인이 늘면서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느끼는 소비의 기쁨은 소수의 특권이 되어 간다고 한다. 지방 소재 대학은 문을 닫았으며,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보다 교사의 수가 더 많다. 생산과 소비가 모두 부진하니 좋은 일자리도 증발 중이다.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빈집이 늘고 부동산 경기도 침체된다. 노후생활의 심리적 버팀목이던 국민연금도 붕괴 위기에 있다. 인구 2만 명을 못 지킨 지방자치단체는 존립의 근거를 잃어 간다.

인구학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온통 잿빛이다. 시민들은 공포를 느끼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오늘의 나를 위해서 열심히 살 수밖에. 이기주의가 삶의 원칙이 되는 각자도생의 정글이 될 판이다. 정부는 대책을 쏟아내지만 출산율은 세계 최저에서 요지부동이다.

나는 인구학자들이 주장하는 인구절벽에 대한 우려에 동의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에 바탕을 둔 진단과 해결책 제시에는 반대한다. 차분하게 우리가 직면할 인구위기에 대해 공적인 공간에서 토론이 있었으면 한다.

생산가능인구란 개념은 미래를 진단하고 예측하는 데 적절한 개념인가? 인구학의 진단은 15세부터 64세까지 일할 수 있는 노동력 비중의 축소에 따른 부정적 결과에 의존한다. 그러나 일하고자 하는 65세 이상의 건강한 노인은 꾸준히 증가한다. 이들은 생산가능인구가 아닌가? 인구학이 생산가능인구를 이상적 상태의 육체적 능력에 초점을 두고 설정한 듯 보인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효과가 일상에 이미 침투하고 있는데 과거 산업화 시대 경제발전 모델에 바탕을 둔 예측이라는 인상이다.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 노동생산성도 상승할 것이다. 이 상승분은 왜 생산가능인구의 축소로 인한 경제성장의 감소분을 상쇄할 수 없는가? 인구 감소는 청년실업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없나?

내가 가진 근본적인 의문은 인구절벽이 정말로 경제를 망하게 할 것인가이다. 세계 역사에서 한 국가 경제가 인구 감소에 의해 망한 적이 있는가? 경제위기는 대개 잘못된 정치적 결정, 정책 실패, 권력과 기득권의 탐욕 때문 아니었나?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연금재정 악화와 지방 소멸에 대한 인구학의 진단도 일차원적이다. 미래 연금재정 상태를 예측할 때 납부하는 총액이 줄어들어 위기가 올 것으로 예측한다면 연금을 운용하고 지출하는 방식에 문제가 없는지 먼저 살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연금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방의 인구가 줄어드는 근본적 원인이 저출산 때문인가? 그 전에 지방의 청년들이 왜 스스로 대도시의 척박한 생존경쟁을 택하는지 고민해야 하지 않나?

인구학이 가진 학문적 가치와 유용성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현 상태를 불변의 사실로 두고 미래를 예측하는 한 과거의 학문이 될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시나리오에 근거해 머릿수 세기에 몰두하고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한 현실에서 정작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문제를 은폐하고 오도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스펙을 쌓으며 취직하면 바로 잊을 내용의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 아이 키우며 일하느라 직장에서 서러운 젊은 엄마들, 보수와 승진에서 체계적인 차별에 노출된 여성들, 하루 종일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해 쓸쓸하고 우울한 일상을 보내는 가난한 부모들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단기적 성과를 기대한 대책보다 이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고 공평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면 인구절벽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인구절벽은 출산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과 기회의 문제 아닐까? 국회입법조사처의 인구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약 736년 뒤 대한민국 인구가 소멸할 것이라 한다. 현재를 기준으로 736년 전은 고려 말기로 백성들이 원나라의 침략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하던 시기이다. 그 당시 위정자들이 2019년 대한민국의 후손들을 걱정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이를 두고 뭐라고 할까?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인구학#생산가능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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