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출판 윤리, 학계가 자정 나서야[기고/홍성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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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 서울대 의대 교수·ICMJE 위원
홍성태 서울대 의대 교수·ICMJE 위원
의학 연구에서 저자가 지켜야 하는 연구와 출판 윤리 항목에는 ‘저자됨(authorship)’이 있다. 국제의학학술지편집인위원회(ICMJE)는 저자의 기준으로 다음 4개 항목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①연구의 주제 선정 등 상당한 지적 기여나 연구 결과의 직접 생산 ②논문의 작성 또는 수정 ③최종 원고 검토 및 투고 동의 ④전체 연구 내용에 대한 공동 책임이다. ④는 2013년 추가됐다. 이 기준에 맞지 않는 저자를 논문에 기입하면 저자됨 위반(inappropriate authorship)이 된다. 2009년 대한병리학회에 제출된 영어 논문에 고교생이 제1저자로 오른 이번 사건의 경우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실상 논문에 기여가 없는 무자격 저자됨이 문제다.

문제는 이른바 선의나 다른 필요에 의한 저자됨 위반 사례가 이번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소위 명예저자(또는 선물저자)가 흔하고 올바르게 저자를 기록해야 한다는 인식이 매우 느슨하다. 하지만 저자는 연구 내용과 동일하게 사실대로 기록해야 하는 중요한 정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내 연구자 모두 논문의 저자 실명제를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 국제 기준에 맞지 않게 저자를 표기하면 그 후과(後果)가 이번처럼 우리 연구자의 목을 조여 올 것이다. 글로벌 학술 경쟁을 벌이는 시대다. 2015년 교육부는 연구윤리지침을 개정하면서 부당한 저자 표시와 중복 출판을 연구 부정행위로 분류했다. 저자됨 위반도 중대한 연구윤리 위반으로 문제 삼을 근거가 국내에 생긴 것이다. 타율에 의한 규제와 간섭이 연구 자율성을 위축시키기 전에 학계 내부의 자정 작용을 통해 저자 실명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또 대학 입시에서 엉터리 학술연구 스펙을 제대로 검증할 것을 제안한다. 고교생의 연구 현장 참여는 장려해야 하지만 올바르게 관리하고 평가해야 한다. 대학 측이 수험생의 모든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기는 역부족일 수 있다. 하지만 최종 합격자만큼은 허위 스펙을 걸러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대학은 고교생의 연구 참여와 이를 입시에 반영할 때의 검증 방식을 크게 보완해야 한다. 소는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전국 모든 연구자들의 허탈한 심정을 그렇게라도 달래야 한다.

홍성태 서울대 의대 교수·ICMJE 위원
#저자됨#논문#저자 실명제#명예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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