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정책 앞서 나가면 죽는다” 미세먼지 입 다문 환경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정은·정책사회부
이정은·정책사회부
“아, 아니…. 그런 이야기 어디서 들으셨어요? 지금 나가면 안 되는 내용인데….”

정부의 미세먼지 현안 점검회의가 열린 지난달 30일. 동아일보가 회의에서 논의된 정책 내용에 대해 취재에 들어가자 환경부 공무원의 안색이 돌변했다. 그는 “요즘 위에서 발설자를 색출하는 보안 조사가 얼마나 세게 들어오는지 아느냐. 정보 소스가 어디냐”고 되물었다. 발뺌하기식 부인만 반복됐다.

다른 공무원들도 비슷했다. “현 단계에선 알려줄 수 없다”라거나 “담당자 ○○○가 알고 있을 것”이라며 떠넘겼다. 다른 당국자는 “기획재정부나 산업통상자원부와 상의하지 않고 먼저 정책을 치고 나가면 우리는 죽는다”라고 말했다. 내용을 확인하는 데 10통의 전화를 돌려야 했다.

미세먼지 탓에 국민의 불안과 불편이 가중되는데도 주무 부처가 앞장서서 정책을 추진하고 관계 부처를 설득하기는커녕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표 미세먼지 정책’은 없다고 자인하는 셈이다.

환경부는 심지어 기상청과 공동으로 추진 중인 초미세먼지(PM2.5·입자 크기 2.5μm 이하) 측정망 확충이나 미세먼지·황사 특보 통합시스템 구축에 대해서까지 “정부 내 논의는 시작하고 있지 않다”고 한동안 부인했다. 또 3일 기상청과 공동 주최할 예정이던 언론사 부장들과의 미세먼지 간담회는 동아일보 기사가 나가자 갑자기 취소했다.

정책 수립과 간담회 준비에 매달리고 있던 기상청은 환경부의 ‘거짓말’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부처 간에 얼굴을 붉혀가면서까지 조율해온 관련 정책들이 다 뭐가 되느냐”며 어리둥절해했다.

환경부는 늘 “우리는 힘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산업논리에 밀려서 환경정책 시행이 어렵다며 볼멘소리를 해왔다. 지금이 산업화 시대인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국민 건강 문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부상했는데도 약자 타령만 하는 태도는 하나도 바뀐 게 없다. 윤성규 장관은 박근혜 정부의 ‘3대 장수 장관’ 중 한 명이다. 그런 신임을 받는 장관 밑에서 이제는 환경부가 제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는 주변의 수군거림이 커지고 있다. 무기력함에 갇혀 공직자로서의 자존감을 버리거나 지레 위축되는 환경 공무원들의 ‘약자 코스프레’는 거둘 때가 됐다는 말이다.

이정은·정책사회부 lightee@donga.com
#미세먼지#환경부#공무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