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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랜턴 의지해 산길 종주… 강추위로 야경 감상 엄두못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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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랜턴 의지해 산길 종주… 강추위로 야경 감상 엄두못내

임재영기자 입력 2016-02-01 03:00수정 2016-02-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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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트레일 월드투어 ‘홍콩 100km 레이스’ 뛰어보니
홍콩 100km 울트라 트레일레이스 참가자들이 출발신호와 함께 힘차게 달려나갔다. 8개 산을 넘는 체력 부담 외에도 지구촌을 덮친 맹추위를 견디며 레이스를 펼쳐야했다. 홍콩=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비에 젖은 장갑에 얼음이 맺혔다. 땅바닥에 깔린 잔디는 서리가 내려앉은 꽃처럼 하얗게 변했고 열대나무의 잎에 매달린 물방울은 고드름으로 변했다. 지구촌에 맹추위가 기세를 떨친 지난달 23, 24일. 아열대기후의 홍콩도 예외는 아니었다. ‘홍콩 100km 울트라 트레일 레이스’에 참가했던 기자는 깊고 깊은 산속에서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이 레이스는 홍콩 해안과 8개의 산을 뛰고 걸으며 한계에 도전하는 대회로, 30시간 안에 100km를 완주해야 한다. 83km 지점의 8번째 체크포인트(CP·기록 확인과 간식 등을 제공하는 곳)를 지나 바늘처럼 뾰족하게 솟은 전산(針山·해발 532m)을 오르자 날씨가 험악하게 변했다. 비가 쏟아지면서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 일부 참가자는 중도에 포기하고 되돌아가기도 했다. 연달아 이어진 차오산(草山·647m)을 오르고 내려올 때에는 냉기가 엄습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그대로 얼어버릴 것 같았다. 꽁꽁 얼어붙은 내리막길을 살금살금 내려간 끝에 90km 지점에 있는 마지막 CP에 도달했다.

대회 주최 측은 참가자의 안전을 고려해 이곳에서 대회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CP에는 구급차와 구조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미 상당수 참가자가 저체온증, 미끄럼 부상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2시간 동안 다른 참가자 70여 명과 간간이 떨어지는 우박을 맞으며 추위를 견뎌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로 돌아간 뒤 대회 완주를 인증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 비경과 맹추위가 교차한 코스


23일 오전 8시 홍콩 동부지역인 사이쿵(西貢) 반도의 팍탐충(北潭涌) 공원. 세계 50여 개국에서 찾아온 울트라 트레일 러너 2001명이 동시에 출발했다. 궂은 날씨가 예고된 상황이어서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묻어났다. 비닐을 몸에 감아 바람을 막으며 저체온증을 예방하려는 이들이 많았다. 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무들이 뿌리째 뽑힐 듯이 마구 흔들렸고 곳곳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완만한 오르막과 숲길을 지난 뒤 최대 저수지인 ‘하이아일랜드’가 광활하게 펼쳐졌다. 육각형의 암석층 등으로 유명한 세계지질공원을 지난 뒤에는 홍콩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안선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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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에는 제주의 식물과 비슷한 우묵사스레피나무, 고사리 등이 눈에 띄었다. 해안가에 핀 제비꽃, 미역취 등도 정겨웠다. 열대 식물이 울창한 숲 속 길은 마치 커다란 뱀이 기어 다니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했다. CP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물과 간식 등을 제공했다. 대회를 위해 준비한 간식만도 바나나 9000여 개, 오렌지 6300여 개를 비롯해 식빵, 초밥, 초콜릿, 라면, 커피 등이 충분히 나왔다.

해가 떨어지고 깜깜한 산길을 걸을 때는 오로지 머리에 두른 랜턴 불빛에 의지해야 했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면서 체력은 점점 고갈됐다. 60∼70km 지점에서는 홍콩 야경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지만 기온이 급강하해 이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바람막이, 판초 우의, 비옷 바지, 손난로 등 배낭에 담긴 비상용품을 모두 꺼내 추위를 이겨내야 했다. 통상적으로 대회 완주자는 70%가량이지만 이번에는 절반 정도인 960여 명만이 완주했다.

○팽창하는 트레일러닝

도로를 달리는 마라톤과는 달리 트레일러닝은 비포장길을 코스로 잡는다. 이번 대회는 사이쿵 반도에서 시작해 홍콩 최고 높이인 타이마오(大帽·957m) 산에 이르는 코스로 해안, 밀림, 어촌마을, 산악 등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짜였다. 주룽(九龍) 반도를 동서로 관통하는 맥리호스(麥理浩徑) 트레일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홍콩에서 20여 년간 살고 있는 영국인 스티브 브라마 씨(47) 부부가 기획해 2011년 첫 대회가 열렸다.

인기를 끌면서 참가자가 급증했다. 이번 대회 참가 신청자만도 4500여 명에 이르러 추첨을 거쳐 선발했을 정도다. 참가자는 국적별로 중국이 700여 명으로 가장 많았고 홍콩 550여 명, 일본 120여 명, 말레이시아 80여 명 등이었다. 한국인은 19명으로 전체 참가자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유럽에서 인기인 트레일러닝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로 급속히 번지고 있는 것을 실감케 했다.

국제트레일러닝협회(ITRA)는 2014년부터 ‘울트라 트레일 월드투어(UTWT)’를 시작했다. 월드투어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대회 코스 거리가 100km 이상으로 20개국, 500명 이상이 참가해야 한다. 홍콩 대회도 월드투어 중 하나다. 이번 대회 참가자인 김상도 씨(48·동물병원장)는 “포장도로를 달리는 마라톤이 시들해지는 반면 트레일러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수려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한 세계적인 대회를 국내에서도 개최해 아시아 시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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