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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120만 송이의 튤립꽃을 피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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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120만 송이의 튤립꽃을 피우기 위해

동아일보입력 2013-03-15 03:00수정 2013-08-1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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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가을부터 에버랜드 조경팀 직원들은 그렇게…
13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의 에버랜드 조경 사업장은 축제 준비로 무척이나 분주했다. 손창우 선임(축제 기획 담당·왼쪽)과 김종보 책임(조경 담당)이 튤립 화분을 살펴보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에버랜드 제공
‘튤립과 톱니바퀴.’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처럼 들리지만 삼성에버랜드 ‘튤립축제’에 대해 이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1992년 시작된 이 튤립축제는 국내 최대의 꽃 관련 행사 중 하나다. 매년 3, 4월 120만 송이의 튤립을 선보인다. 이 행사가 20년 넘게 성공을 거둬 온 배경에는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정교하고 과학적인 마케팅이 숨어 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축제라는 무대 뒤의 ‘톱니바퀴’들이다.

○ 해외 꽃 축제 기간의 3배

13일 오후 2시 경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의 에버랜드 조경 사업장. 셔틀버스 승차장에서 300m쯤 떨어진 곳에 30여 동의 비닐하우스가 있다. 겉으로 보기엔 채소를 키우는 비닐하우스와 다를 바 없지만 그 안은 별세계다. 형형색색 화려한 색상의 튤립 수십만 송이가 눈을 황홀하게 만든다. 비닐하우스 앞에는 어른 가슴 높이의 이동식 꽃 운반 카트들이 화물 기차처럼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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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을 하드닝(노지 적응 훈련)하는 중입니다. 벌써 며칠째 낮에는 밖에서 햇빛을 보게 하고 밤에는 하우스에 넣고 있지요. 오늘은 밤에도 일부를 밖에 놓아둘 겁니다. 내일이 ‘출고일’이거든요.” 튤립축제의 조경 부문을 맡고 있는 김종보 책임이 말했다.

튤립축제는 사실 에버랜드 인근의 추운 기후 조건 때문에 탄생했다. 포곡읍 일대는 개나리의 개화 시기가 서울보다 20일 이상 늦다. 그런데 긴 겨울에 지친 3, 4월 나들이객들은 꽃을 통해 봄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이런 사람들을 불러들여야 하는 테마파크로서는 기온 문제가 큰 난관이 아닐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봄의 메신저’로 낙점한 것이 바로 튤립이다. 튤립은 상대적으로 추위에 강하고 개화시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쉽다. 오랜 재배 역사 덕에 품종이 많고 색도 화려하다. 테마파크가 지향하는 ‘일상과 다른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에 제격이다.

에버랜드는 매년 10월경 120여 종의 튤립 구근 120만 개를 네덜란드에서 들여온다. 11월에 절반은 노지에, 나머지는 비닐하우스 안에 심는다. 먼저 개화하는 비닐하우스의 튤립들은 4월 10일경 노지 튤립에 바통을 넘겨줄 때까지 축제를 빛내는 역할을 맡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축제 기간 내내 꽃은 만발한 상태로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에버랜드는 조생, 중생, 만생 품종을 모두 확보해 세밀한 계획에 따라 개화시기를 조절한다. 비닐하우스 안의 튤립 화분을 냉장고에 넣었다 뺐다 하며 정확한 날짜에 꽃을 피운다.

김 책임은 “해외의 유명 꽃 축제 기간이 보통 2주 정도인데 에버랜드는 38일 동안 튤립축제를 연다”며 “다년간의 노하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튤립이라는 ‘배우’가 공연에 나서기 위해서는 수많은 직원들의 땀과 노력이 필요하다. 축제 준비는 1년 전부터 시작된다. 튤립축제가 시작될 무렵이면 벌써 다음해의 테마와 콘셉트를 정하고 4월 이전에 구근 주문을 마친다. 가을에는 구근을 심으면서 구체적인 행사 시안을 만든다. 그 와중에 초여름의 장미 축제도 함께 준비해야 하니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아 돌아가야 한다.

튤립축제를 기획하는 사람들은 마케터와 조경, 디자인 전문가 등 20명 정도지만 축제 기간이 가까워지면 500명 가까이가 투입된다. 축제 기획을 담당하는 손창우 선임은 “축제 기간에는 사실상 테마파크 근무자 전원이 튤립축제에 관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풍차를 튤립과 함께 배치한 지난해 ‘에버랜드 튤립축제’ 행사장의 모습. 에버랜드 제공
▼ 에버랜드 22일부터 38일간 튤립축제 ▼

테마파크의 특성상 관람객이 없는 시간에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축제 준비와 관리는 대부분 밤과 새벽에 이뤄진다. 에버랜드 인근은 오후 11시가 되면 버스가 끊어지기 때문에 직원들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다. 가끔은 4월 초에도 눈이 온다. 하얀 ‘터번’을 쓴 튤립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예쁘지만 그대로 두면 꽃이 이틀밖에 못 간다. 김 책임은 “여사님들(조경 관리 여직원들)이 일일이 송풍기 바람으로 눈을 털어낸다”며 “날씨가 아주 추울 때는 화단을 비닐로 덮어준다”고 했다.

○ ‘실시간 학습’ 내용 바로 반영

튤립축제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건 정교하고 세련된 마케팅이다. 에버랜드의 축제 기획 담당 부서는 마케팅 부문 소속이다.

매년 초 작성하는 이듬해 튤립축제 기획안은 고객들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사내에서 만든 기획안은 10∼20명의 고객이 패널로 참가하는 포커스그룹인터뷰(FGI)를 거쳐 낱낱이 해부되고 평가받는다. 축제 기간에는 출구 만족도 조사가 실시된다. 퍼레이드와 공연, 조경, 놀이기구, 테마 전시장 등 모든 분야가 평가 대상이다. 에버랜드는 몇 해 전부터 자체 조사를 중단하고 외부기관에 위탁했다. “젊고 예쁜 여성 아르바이트생이 설문지를 돌리니 실제보다 결과가 좋게 나온다”는 사내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튤립축제에서는 통합마케팅커뮤니케이션(IMC)과 실시간 학습 등 서비스 마케팅 기법이 총동원된다. 튤립축제를 전후해 테마파크 출입구의 안내 및 전화 응대 멘트는 물론 셔틀버스 배경음악, 직원들의 유니폼, 기념품점의 상품, 식당 메뉴까지 튤립과 어울리는 것으로 바뀐다. 한 직원은 “매년 새롭게 변경되는 출입구 안내와 전화 응대 멘트 덕분에 축제를 앞두고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고 말했다.

축제 전 일주일 동안은 예행연습을 하고 개막 직후 2주일은 집중적인 모니터링을 벌여 고객의 반응을 살핀다. 모니터링 결과는 즉각 축제에 반영된다. 고객의 반응이 좋은 기념품은 더 들여놓고 반응이 좋지 않은 조형물은 제거하는 식이다. 이렇게 빠르고 즉각적인 피드백 시스템은 ‘실시간 학습’이란 최신 경영학 흐름에도 부합한다.

고객의 트렌드를 항상 주시하는 것은 기본이다. 손 선임에 따르면 예전에는 가족 나들이가 유아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기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체험을 중시하는 성향도 강하다. 또한 아이들의 수준이 높아져 눈높이를 많이 낮춘 콘텐츠는 잘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2011년 꿀벌을 주인공으로 한 공연을 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별로더라고요. 그래서 지난해에는 세련된 내용으로 바꿨습니다.”

올해 튤립축제는 22일 개막해 다음 달 28일까지 열린다. 에버랜드는 체험정원인 ‘시크릿가든’에 거대한 새 둥지 형태의 조형물을 만들고 정문에서 시작하는 길이 500m의 길에 봄꽃을 늘어뜨린 ‘행잉 가든’을 새로 조성할 예정이다.

용인=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에버랜드#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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