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의 패션 談談]〈6〉폭염에는 요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111년 만의 폭염이라네요. 한반도에서 1907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며칠 전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습니다. 기상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지구온난화를 경고하였지만 이제서야 제대로 실감하며 ‘올 게 왔구나’ 싶어 은근 겁이 납니다. 우리는 한여름에만 덥지만 이런 날씨가 지속되는 나라는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1년 내내 한여름’인 나라들의 패션에 주목해 봤습니다.

영토에 적도가 지나가는 나라들은 주로 아프리카에 많습니다. 가봉, 우간다, 탄자니아 같은 나라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아프리카 소수민족 중 세계적으로 알려진 마사이족은 바로 적도 근처인 케냐 중앙고원에서부터 탄자니아의 평원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해 살고 있죠. 이들의 패션은 화려합니다. 붉은 망토를 어깨에 두르고 윤기 나는 미끈한 몸매를 반쯤 드러내는 것이 마사이족 패션의 특징입니다. 붉은 망토를 입는 것이 생존을 위해 초원에서 맹수를 피하는 방법이라고도 하지만 실은 또 다른 생존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남녀 짝짓기 방법이죠. 결혼 적령기가 되면 남자들은 일렬로 서서 공중으로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체력을 과시함과 동시에 펄럭이는 망토로 여자들에게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강조합니다. 오히려 여자들은 결혼 후에 화려한 색상의 의상과 오색찬란한 유리구슬을 꿰어 만든 원형 목걸이와 함께 양팔과 다리에 여러 종류의 장신구를 착용하며 요염한 맵시를 뽐내죠. 이게 다 내 남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생존법이 아닐까 합니다.

남미로 가면 브라질,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이 적도의 나라입니다.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정글에 인접한 국가들이죠. 아마존 정글에 사는 원주민들의 패션은 어떨까요. 미국 하버드대에서 인류학, 생물학과 더불어 민속학 박사학위를 받은 웨이드 데이비스는 아마존 원주민 부족들과 3년 이상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정글에 사는 새들의 깃털로 관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진흙과 천연 염료를 섞어 만든 재료로 얼굴과 몸 전체를 페인팅한 그들의 사진은 흡사 짝짓기를 위해 치장한 한 마리의 새와 같았습니다. 특히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한껏 깃털을 부풀린 수컷 앵무새의 요염한 자태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한 모습은 미 라스베이거스 쇼나 브라질 리우 카니발 무희들의 의상과 분장에 영향을 주었고 전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의 컬렉션에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폭염은 작게는 개인의 심신을 위협하는 요소이고 크게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인적 고통을 수반하는 사회적인 재난임이 분명합니다. 이제 폭염은 올해만 극성스럽다 말겠지 하고 바라기보다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여름, 홈쇼핑에서 히트를 친 패션 아이템이 하늘하늘한 긴팔 블라우스였던 건 에어컨 바람에 긴 시간 노출되는 등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그전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 수세기 전부터 폭염에 순응한 적도의 요염한 패션이 상대방의 매력을 발견하게 한 도구였으며 현대패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듯 말입니다. 여러분, ‘폭염’에는 ‘요염’입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패션#폭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