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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축제 등 볼거리 많은데… “화장품-홍삼 쓸어 담으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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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축제 등 볼거리 많은데… “화장품-홍삼 쓸어 담으면 끝”

김현수 기자 , 정민지 기자 , 강성휘 기자 입력 2017-12-06 03:00수정 2017-12-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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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커장성’에 갇힌 한국관광]<2> 쇼핑만 하는 싸구려 투어
5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면세점에서 중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행객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다. 한국 면세점들의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계속 커지면서 이들을 데려다주는 대가인 ‘모객 인센티브’의 규모도 연간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4일 오후 서울 중구 시내면세점 지하 3층 주차장. 엘리베이터 바로 앞자리에 승합차 2대가 문을 연 채 대기 중이었다. 두 손에 각각 쇼핑백 5개씩 들고 나타난 중국인 2명이 승합차 가득 물건을 실었다. 이른바 ‘다이궁(代工)’으로 불리는 중국인 보따리상들. 한국 면세점에서 화장품 홍삼 명품을 사고 중국에 내다 파는 일종의 구매 대행 업자들이다. 아침부터 주요 점포 앞에서 줄을 서 물건을 퍼 담는다. 면세점 관계자들은 “다이궁은 항공권을 보여주고 면세점 물건을 산 뒤 항공권을 취소하는 방식으로도 영업한다. 면세점이야 어쨌든 물건을 사가는 손님이니 이들에게도 인센티브를 주면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 관광산업이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에게 크게 의존하면서 그들이 좋아하는 ‘면세점 투어’가 한국 관광의 중심 콘텐츠가 돼버렸다. 그 때문에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한국의 면세점 투어조차 ‘유커 싸구려 관광의 한 축’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커에게만 집중하다 보니, 돈 주고 유커를 모셔오는 ‘모객 인센티브’ 제공은 물론이고 밀수 보따리상의 판로 역할까지 하는 기형적인 구조까지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관광을 풍요롭게 할 다양한 관광콘텐츠 개발은 늘 뒷전이다.


○ 유커조차도 비판하는 ‘한국 관광의 콘텐츠 부족’

관광 수익으로 이어지는 쇼핑은 좋은 관광 콘텐츠임이 분명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단체여행객 1인 평균 지출 경비 1695.5달러(약 184만 원) 중 가장 소비를 많이 한 분야는 쇼핑(1125.6달러·약 122만 원)이었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관광 업계가 수익을 내기 쉬운 면세점 쇼핑 위주의 시장 구조를 만들다 보니, 한국 특유의 관광 콘텐츠나 잠재적 가치가 외국인 관광객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즈니스 출장으로 한국을 방문 중인 미국인 스테퍼니 씨(29)는 5일 기자에게 “한국을 5회 이상 방문했지만 아직 한국 관광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다. 전통 축제를 체험하고 싶은데, 관련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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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의 ‘2016년 외래 관광객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한 활동은 쇼핑이 47.0%로 압도적이었다. 2위는 업무수행(9.8%). 3위와 4위를 차지한 식도락 관광(8.9%), 자연경관 감상(7.7%) 등 쇼핑 이외의 관광 비중은 크게 낮았다. 유커조차도 한국의 관광 콘텐츠 부족을 지적할 정도다. 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유커의 한국 관광이 최고조였던 2014년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국가별 관광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조사 대상 16개국 중 14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다시 한국을 찾는 재방문율도 25.7%에 그쳤다. 다른 조사에서도 유커의 한국 관광에 대한 불만사항 중 1위가 ‘관광자원 부족’(41.6%), 2위가 ‘단조로운 일정과 자율성 부족’(22.1%)이었다. ‘한국 관광 인프라가 충분하다’는 평가는 9.4%에 불과했다.

한국 관광의 전반적인 매력도 떨어지고 있다. 미국의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올해 3월 36개국 전문가를 포함한 2만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전통문화자산 및 여행 가치는 조사 대상 80개국 중 각각 44위, 67위에 불과했다.

○ 유커 모객에 연 1조 원 쓰는 한국 면세점의 그늘

면세점이 중국인 관광객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관행은 중국 여행사로부터 시작됐다. 중국 현지에서 관광객을 모은 여행사는 한국 여행사에 ‘우리가 이만큼 사람을 모았으니 상품을 저렴하게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국내 여행사들은 여기서 입은 손해를 보완하기 위해 국내 면세점 등에 고객 1인당 송객 수수료를 얼마나 줄 것인지 경쟁을 붙인다. 그 결과가 2박 3일 동안 면세점과 쇼핑몰을 전전한 후 변두리 숙박업소에서 자는 저질 쇼핑 관광의 탄생과 확대재생산이다.

쇼핑 관광의 질을 떨어뜨리는 송객 수수료는 계속 오르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면세점이 여행사에 지불하는 송객 수수료는 2013년 2967억 원으로, 총 시내면세점 매출 대비 7.3% 수준이었다. 지난해에는 9672억 원으로 전년(5630억 원) 대비 71.8% 늘었다. 이는 시내면세점 매출 대비 10.9%, 단체관광객 매출 대비 20.5%에 이르는 수치. 올해 상반기(1∼6월) 송객 수수료는 5204억 원으로 결국 연간 1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면세점 업계에서조차 “시장 규모 12조 원의 세계 1위 한국 면세점이 유커의 값싼 쇼핑 기지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악순환 구조에 요즘은 면세점뿐만 아니라 대형호텔과 신규 비즈니스호텔들도 가세한 형국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를 통해 값비싼 교훈을 얻었으니 앞으론 쇼핑 상품 기획 주도권을 유커나 중국 여행사가 아닌, 우리(한국 업계)가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정 동국대 법대 교수는 “일본인 관광객이 올 땐 모두 일본 마케팅, 그 다음엔 중국이더니, 이젠 동남아에 기웃거린다”며 “흐름에 좌우되지 말고 면세점이 그 나름의 특징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푸는 등 실효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정민지·강성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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