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GDP 폐기론 실험중… 뜬구름 잡기라는 비판도[광화문에서/김윤종]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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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파리 특파원
김윤종 파리 특파원
“국내총생산(GDP)보다는 기후 변화, 불평등 해소, 복지, 건강 등 다른 지표를 국가 예산을 짜는 데 우선시하겠습니다.”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의 최근 발언이다. 유럽 사회는 북유럽 끝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의 이런 색다른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나라마다 예산안 등 내년 살림을 고민하는 연말에 아이슬란드 정부가 2020년 경제성장 목표와 예산안 편성에서 GDP 비중을 39분의 1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아이슬란드 총리실은 대기 질, 노동시간, 직업만족도, 교육 등 39개 지표를 새로 설정했다. GDP는 전체 39개 중 하나의 지표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국가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생산활동의 총합을 뜻하는 GDP는 수십 년간 한 나라의 성장을 나타내는 절대적 지표로 통했다. GDP가 도입된 건 1930년대. 당시 단편적 통계보다는 한 국가 경제의 큰 그림을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 절실했다. 대공황이 발생한 상황에서 경제가 얼마나 위기인지를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적절한 정책을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출신 미국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GDP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하게 된 배경이다. 이후 ‘GDP 증가율이 몇 퍼센트냐’에 따라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가 웃고 울었다.

아이슬란드가 그런 절대적인 GDP를 퇴물처럼 취급하는 셈이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도 친환경 에너지, 의료체계 등 삶의 질과 관련된 지표를 합친 ‘GDP+알파’ 개념을 통한 경제발전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5월 GDP보다는 다른 지표에 초점을 맞춘 ‘웰빙예산(Wellbeing Budget)’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GDP 개념으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유튜브 등이 무료로 제공하는 디지털 서비스를 비롯해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변화된 공유경제 등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환경 훼손이 심한 개발사업도 당장은 생산적 경제활동으로 여겨져 GDP에 담기는 반면 ‘기후변화’ 문제에는 전혀 대응하지 못한다.

실험 초기이다 보니 긍정적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여주기식 포퓰리즘’ 혹은 ‘뜬구름 잡기식 정책’이란 비판도 만만치 않다. GDP가 증가해야 일자리가 늘고 성장동력이 유지되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출산·고령화, 이민자 문제,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GDP 중심의 성장 기준’을 바꿈으로써, 진정한 경제 성과와 사회 발전이 무엇인지를 재고해야 한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GDP뿐만 아니라 주거, 직업, 공동체, 교육, 시민 참여, 안전 등을 반영한 ‘더 나은 삶의 질 지수(BLI·Better Life Index)’를 매년 발표하고 있다. “사람들의 삶과 열망을 반영할 수 있는 더 나은 지표는 필요하다. 그래야 ‘더 나은 삶을 위한, 더 나은 정책’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이런 변화의 움직임이 경제성장률 달성에만 목표를 두는 접근법에 변화를 촉구하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아이슬란드#gdp 폐기#o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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