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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지 않은 음악 앨범[임희윤 기자의 죽기전 멜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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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지 않은 음악 앨범[임희윤 기자의 죽기전 멜로디]

임희윤 기자 입력 2019-09-06 03:00수정 2019-09-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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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미수(김고은·왼쪽)와 현우(정해인)의 엇갈림은 관객들 입속에 고구마 몇 개를 찔러 넣어준다. 동아일보DB
임희윤 기자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님. 철수입니다. 집에 영수 있나요? 제가 대전역에서 영수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시간째 안 나타나서요.”

첩보영화를 지켜보는 것, 아니 엿듣고 있는 것 같았다. 1990년대의 어느 날, 우리 어머니는 비밀 접선을 앞둔 두 첩보원 사이를 중계하는 본부, 즉 우리 집에서 연방 수화기를 들었다. 이번엔 영수 형이다.

“엄마, 나예요. 영수. 철수한테 혹시 전화 안 왔어요? 서대전역에서 철수 만나기로 했는데 대체 어디 간 건지….”


수차례 간접 교신 끝에 둘은 끝내 엇갈렸고 그날 저녁 영수 형은 지친 얼굴로 귀가했다. 철수와 영수는 만나지 못했다. 스마트폰 메시지라도 직접 주고받았으면 됐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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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을 본 사람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린다. 줄거리나 상황에 개연성이 떨어져 몰입이 힘들었다는 이들, 지난 시절을 표현한 디테일들이 살아있어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다는 분들이 맞선다. 영화는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KBS FM ‘유열의 음악앨범’이 첫 전파를 탄 1994년 10월 1일부터 2005년의 어느 날까지 줄기차게 엇갈리기를 반복한다.

#2. 영화를 보다 몇 번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이게 다 ‘고구마’ 탓이다. 시답잖은 이유로 두 사람의 인연이 몇 년씩 끊겨버리는 상황이 반복되니 목에 고구마가 걸린 듯 답답하다. 복장이 터진다. 전화가 엇갈려서, e메일 비밀번호를 몰라서, 기타 등등. 스마트 시대에 돌아보니 참 시답잖은 이유로 사람과 사람이 영영 멀어질 뻔했다. 근데 바로 이런 고구마적 상황들이 울대를 팽창시키고 목을 메이게 만든다. 내가 너무 장수(?) 중인 건지 몰라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적, 진짜로 겪은 비슷한 경험들이 떠올라서다.

#3. 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느 날, 옥상에 설치한 TV 안테나가 돌아가 화면이 끊겼다. 금고털이처럼 미세하게 다이얼을 돌려도 라디오 주파수는 종종 끊겼다. 끊겼던 것이 다시 이어질 때,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던 게 생각난다.

#4. 처음 들어간 밴드에서 하게 된 첫 공연. 형들이 내게 맡긴 연주는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 기타 솔로 절반이었다. 그 어려운 곡을 따라 치려고 서울 2호선 지하철 안에서 그 몇 마디를 몇 번이나 돌리고 돌려서 들었는지 모르겠다. 뒤로 감기 버튼을 누르고 워크맨의 모터가 빠르게 돌아가는 동안 음악은 끊겼다. 4.7초쯤이 지나야 기타 솔로의 첫 부분이 나온다는 것을 체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닳도록 한 부분만 반복 재생한 탓에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져 기타 솔로 부분만 느려졌을까, 걱정도 좀 했다.

#5. 그 시대에, 어쩌면 덜 발달한 통신기술에 몇 가지 불운이 겹친 통에 몇몇 사람과는 진짜로 영영 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곁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그 시절 다른 이들과의 끊김 덕분에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속에서 조금은 이상한 미수와 현우의 언행, 설명되지 않는 불친절함은 의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교신이 끊긴 상황에서 우리 각자는 다양한 생각을 하고 이런저런 상황을 겪었다. 서로가 모르게. 끊김은 우연처럼 보였지만 끊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6. 모자이크, 신승훈, 유열, 핑클, 토이, 이소라, 루시드폴, 콜드플레이…. 영화에 나왔던 음악들을 차례로 들어본다. 스트리밍 서비스 덕이다. 그 시절보다 조금 커지기만 한, 손금조차 변하지 않은 내 손엔 어느새 워크맨 대신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유열의 음악앨범 플레이리스트’. 내겐 꼭지만 돌리면 언제든 콸콸콸, 수돗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음악이 있다. 시냇물처럼 끊기지 않고 흐르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난 정말 좋다. 워크맨 시절로 돌아가고픈 생각은 없다.

#7. 어쩌면 삶이란 게 그냥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요즘 나는 어딜 가든 수많은 카메라에 둘러싸여 살고 있지 않나.

#8. 영화의 음악 선곡에 참여한 친한 라디오 PD에게 극이 끝나고 흐르는 자막을 찍어서 보냈다. 같은 시절에 다른 곳에 살았던 옛날 사람에게. 그는 나와 동갑이다. 스마트폰에 달린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밑에 짧게 한 줄 달았다. ‘한잔 하자.’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유열의 음악앨범#김고은#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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