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의 오비추어리] 냉동 수산물로 나이지리아 재벌 된 아프리카 남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4일 12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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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이브루. 사진출처: 나이지리아 더가디언
마이클 이브루. 사진출처: 나이지리아 더가디언
아프리카에서 냉동 수산물을 팔아 재벌 반열에 오른 나이지리아의 기업인 마이클 이브루가 2016년 9월 6일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6세.

그는 냉동 수산물 수입으로 성공해 팜오일 생산, 운수, 관광, 양조, 목재, 양계, 언론, 호텔, 은행, 해운, 보험 등을 아우르는 거대한 기업집단을 만들었다. 계열사만 20개를 웃돈다. 현지 매체인 부즈나이지리아는 이브루를 나이지리아에서 14번째 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브루는 1930년 12월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인 라고스에서 순회 성직자였던 피터 이브루의 자녀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피터는 “교육이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며 자녀들을 최대한 학교에 보냈다. 이브루는 중등학교인 이그보비칼리지의 6년 과정을 3년에 마칠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1951년 무역회사인 아프리카연합회사(UAC)에 입사했다. 당시 나이지리아의 고졸자가 UAC에 입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UAC에서 사회 초년병을 보내던 이브루는 1956년 영국인 지미 라지와 함께 회사를 세워 독립했고 사업 초기 건설업에 매달렸다. 현지 고교 등 여러 관급 공사를 맡으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건설업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공사 일정과 대금 지급 등이 지연될 때가 많았다.

이브루는 인근 국가인 가나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하게 냉동 수산물을 판매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냉동 수산물의 잠재력을 간파했다. 개발도상국인 나이지리아에는 식량이 많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소, 닭 등에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지만 육류의 가격은 너무 비쌌다. 근해에서 잡히는 수산물도 많지 않아서 물고기마저 비쌀 수밖에 없었다. 당시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일당이 4실링8펜스였는데, 수산물 1파운드의 가격은 4실링이었다. 이브루는 해외에서 저렴하게 냉동 수산물을 들여오면 큰 이문이 생길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나이지리아에선 냉공 수산물이 ‘죽은 물고기’로 여겨졌다. 사람들이 냉동 수산물을 먹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육류를 파는 상인들은 ‘냉동 수산물을 먹으면 사람들의 피가 썩는다’는 루머를 퍼뜨렸다. 여기에 대한 인식 전환이 매우 필요했다. 그는 새벽 4시 수산시장로 향해 물고기를 훈제해서 파는 여성들을 공략했다. 직접 냉동 수산물에 소금, 기름을 발라 훈제 물고기를 만들었고 ‘피가 썩는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설득했다. 또 단백질 결핍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저렴한 냉동 수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으로 시장에서는 긍정적인 변화가 서서히 일었다.

이브루는 냉동 수산물 판매량을 늘리며 유통망을 구축했고 다른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자금까지 모았다. 1963년 일본 수산기업과 함께 냉동 어선 등을 확보해 수산업에도 진출했다. 1969년에는 글로벌 브랜드가 생산하는 자동차, 트랙터, 트럭 등을 수입해서 파는 회사도 설립했다. 1973년에는 양계 농장을 인수했고 이듬해에는 목재 생산에도 진출했다. 1990년대에는 은행도 설립했으며 남동생을 통해 언론에도 진출했다.

이브루는 2006년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따서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저소득층 학생 교육, 미혼모 지원, 노인 보건, 교정시설 수감자 지원 등을 아우르는 사업을 하고 있다. 아내 세실리아의 가문에서 운영하던 사립 초등학교를 확대해서 대학까지 세웠다. 개발도상국 출신으로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잊지 않은 셈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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