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개혁 구호 더이상 안먹혀” 위기감

  • 입력 2004년 12월 1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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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내에 ‘국정 쇄신론’이 무성하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집권 3년차인 2005년의 국정운영기조 전환을 위한 모색이다. 다만 쇄신론은 아직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양상이다. 일단 정기국회 이후 대규모 개각이 예고되고 있으나 ‘개혁’ 위주의 국정운영 기조를 ‘민생과 통합’으로 전환할 것인지를 놓고는 당-정-청간에 다소 시각차가 있다.》

▼청와대, 黨서 2,3명 내각진출 밑그림▼

청와대는 이미 개각 준비에 착수했다. 김우식(金雨植) 비서실장과 민정팀이 새로운 인물을 물색하고 있다는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개각의 확실한 기조는 노 대통령과 당정간의 보다 분명한 역할분담이다. 노 대통령은 이미 이해찬(李海瓚) 총리의 기용과 내각 부문별 팀장제의 도입 과정에서부터 ‘분권화’와 ‘역할 분담’이라는 키워드에 집착해 왔다. 개각은 이 같은 노 대통령의 구상이 보다 분명해지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우선 노 대통령은 내치(內治) 분야는 이 총리를 중심으로 당정에 책임을 맡기고 통일·외교·안보 및 국정운영의 큰 그림을 그리는 쪽으로 본인의 역할을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정동영(鄭東泳) 통일,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 정동채(鄭東采) 문화관광부 장관이 유임되면서 동시에 당에서 2, 3명의 장관이 보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무차관제 도입도 검토되고 있다. 일본형 내각제를 벤치마킹한 정무차관제는 당내 초재선 의원들의 정부 진출이라는 점에서 ‘내각제형 책임정치 구현’이라는 노 대통령의 철학과도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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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영입하는 장관은 ‘50대, 여성 우선’ 인사를 선호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교체 대상 부처로는 노 대통령 취임과 함께 입각하거나 청와대 등에서 자리를 옮긴 외교통상, 행정자치, 여성, 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우선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양수산, 건설교통부, 기획예산처도 교체 검토 대상이다.

부처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이른바 권력기관 ‘빅4’의 교체도 예상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내년 봄 임기가 만료되거나 임기 2년째를 맞게 된다.

▼개혁에서 ‘民生과 통합’으로 변화할듯▼

여권에 있어 올해는 ‘개혁’의 해였다. 17대 총선에서 과반수 획득의 여세를 몰아 ‘4대 법안’을 밀어붙였다. 이는 일종의 지지자들을 의식한 ‘팬 서비스’이기도 했다. 내년이면 과반수가 무너진다는 의회 내 역학관계 변화도 감안됐다. 그러나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지지자들(30%)에게는 위안을 줬지만 ‘비판적 지지층’ ‘합리적 보수층’(40%)의 이반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민생’과 ‘통합’으로의 기조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대세다. 얼마 전 노 대통령을 면담했던 당내 한 핵심인사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저평가에 대해 매우 억울해하더라”며 “그러나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정운영 기조의 변화에는 전제가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보다 분명한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민병두(閔丙두) 기획위원장은 1일 “올 하반기를 잘 마무리해야 그 다음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혁의 성과 없이 섣불리 기조전환을 꾀할 경우 ‘집토끼’마저 놓칠 수 있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다. 하지만 개혁을 더 밀어붙이기에도 힘에 겨워 보인다. 자칫하면 당 노선을 둘러싼 내홍(內訌)속으로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민주당과 통합여부 주목▼

내년 상반기 경제상황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개혁 지속론’을 고집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불황의 가속화, 사회갈등의 분출 등이 여권의 방향타를 민생 쪽으로 강제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다만 남북관계 개선이 가시화되고 정상회담이라는 ‘빅 이벤트’까지 연결될 경우 여권은 보다 여유를 가지고 대야(對野)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권 내부, 특히 구민주당 출신과 호남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통합론’도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 2002년 대선 당시 노 대통령 선거자금을 사용하면서 민주당이 안게 된 빚을 청산해주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민주당과의 ‘동행’을 위한 기반다지기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과의 통합은 반대로 한나라당 및 당내 개혁파들의 거센 반발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화해’와 ‘분열’의 씨앗을 동시에 품은 카드이기도 하다.

이는 또 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추진해 온 ‘동진(東進)론’의 포기를 의미한다. 호남파와 영남파간의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란 얘기다. 아무튼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대화부재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정치권에 상생의 봄바람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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