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보면 그림들은 큰 붓으로 그린 듯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표면이 납작하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면 입체감이 생겨야 하는데, 그림 전체가 한 덩어리인 듯 매끄럽다. 비밀은 작가의 독특한 작업 방식에 있다.
비닐 위에 형체부터 그린 뒤 마지막에 배경을 칠한다. 이후 전체 물감을 떼어내 뒤집어 캔버스에 붙여 ‘물감의 속살’을 보여주는 정의철 작가의 개인전 ‘낯설게 하기’가 충남 공주 갤러리정안면에서 열린다. 러시아 이르쿠츠크 미술학교를 수료한 뒤 줄곧 ‘정체성’을 주제로 다뤘던 작가는 몇 년 전만 해도 자화상 위주로 어두운 색채 작품을 해왔다. 그런 그가 공주로 작업실을 옮긴 뒤 한층 밝은 색채와 편한 구도로 신작을 내놓고 있다.
정의철 개인전 ‘낯설게 하기’에 전시된 작품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정 작가는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이사한 뒤 식물도 키우고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색이 달라졌다”고 했다. 신작들은 붓 대신 물티슈로 물감을 칠해 선과 형태도 부드러워졌다. 인물화를 낯설어하는 한국 관객에게 다가가려는 고민의 결과다. 이 고민의 과정은 갤러리 한쪽 벽면에 전시된 종이 작품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작가는 3년 전부터 매일 한 점씩 그리기로 결심한 뒤 그린 드로잉 중 일부를 선별해 함께 전시했다. 3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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